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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예술? 기술?
  • 편집국
  • 등록 2017-09-11 14: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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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 정보를 훔치고 그것 도 모자라 특정 생각을 심어 놓는다는 설정을 가진 영화가 인셉션이다. 꿈과 현실을 오고가며 일어나는 스펙터클한 이 영화는 꿈에 관한 인간의 무의식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현란한 스토리만으로도 큰 매력을 어필했다. 감독은 여기에 놀랄만한 영상미도 보여줬다.

 

 2차원에서만 가능한 착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무한히 계속되는 펜로즈 계단, 불가능한 형태라고 여겨진 것들이 꿈속에서 실현돼 눈앞에 장대하게 펼쳐졌다. 모든 상상이 실현되고 마음속 생각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창작을 하는 예술가나 디자이너에게는 큰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던 상상의 이미지는 20세기 후반 발전된 디지털 제조기술의 힘을 빌려 실현 가능한 것으로 한걸음 다가오고 있다. 상상만 하던 형태, 불가능한 물체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지털 제조기술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데이터를 이용해 3차원의 좌표를 읽고, 그 좌표 값에 재료를 굳히는 방식으로 물리적 형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복잡한 형상과 구조를 구현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복잡하고 얽혀있는 조형, 오브제 안에 또 다른 오브제가 겹겹이 들어가 있는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과 같은 구조, 뫼비우스의 띠 형태, 불규칙적이고 비정형적 형태, 작은 유닛이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되풀이돼 전체를 이루 는 구조 등 그 표현 가능성은 무한하다.

 

 디지털 기술은 기존 조형 제작의 한계를 극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판매와 유통의 구조도 변화시켰다. 온라인 플랫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품을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이다. 디자인이 대량생산을 전제하지 않아도 되고, 기존의 유통 방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황은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도전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스스로를 아티스트라 부르며, 예술성을 갖는 작품 제작을 하는 작가로서의 디자이너(designer as author)가 등장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디자인된 사물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와 함께 예술이 돼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산업시대 디자인이 디자이너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 게 표현하기보다는 생산성, 경제성, 사용성 등을 먼저 고려해야하는 제약이 있었고, 이러한 점이 예술과 구별되는 디자인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디지털의 기술이 디자인과 융합되면서 여러 제약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고 상상력의 구현, 개성표현을 통해 예술의 고유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미적감동을 회복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픽셀을 쪼개고, 노이즈를 최소화해 실사와 구분할 수 없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지향한다. 디지털의 개념을 단순히 아날로그의 반 대되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것은 다분히 산업시대의 관점으로 디지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패러다임의 궤를 같이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은 형태의 생성 구조가 자연의 원리와 같아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는 창작의 도구로도 손색이 없다. 생명계의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자연계의 패턴을 시각화해 정교하게 구현된다.

 

 디자인 생태계 전반에 큰 변화를 맞고 있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새로운 디자인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 사실이 기존의 대량생산 방식의 디자인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고정되고 학습된 미의 가치는 변화된 패러다임 속에서 새롭게 재정립돼야 할 것이다.

 

하은아교수

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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