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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간의 백야 속에서 아이슬란드를 거닐다
  • 편집국
  • 등록 2017-09-04 15: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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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해외여행을 아이슬란드로 간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크게 두가지 반응을 보였다. 첫 해외여행부터 힘주고 간다는 반응과 굳이 왜 아이슬란드로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이슬란드를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히 거창하지 않았다. 2014년에 개봉했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보이는 아이슬란드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는데, 그 영화를 보고 한번쯤 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열심히 저축해 충분한 금액을 모았고, 항공권을 예매하기만 하면 아이슬란드로 가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항공권을 예매하려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냥 이번 학기 이 돈을 쓰면서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편하게 다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대학생일 때, 통장에
이정도 이상의 금액이 모일 일이 언제 있을 지를 생각하니 지금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항공권을 예매하니 ‘항공권 예매만 해라, 그러면 알아서 준비를 하게 된다’ 라고 말해준 친구 말처럼 척척 준비를 해나갔다. 본격적인 17-1학기의 수업들이 시작되기 전 모든 준비를 마치고, 1학기를 보냈다. 출국 1달 전, 독일에서 실습 중이던 친구가 아이슬란드에 3일정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올해 초 농담반 진담반으로 갈 수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해왔던 친구였는데 정말로 따라온다니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타지에서 혼자인 것 보다는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 든든하니까. 일정도 딱 렌트카를 빌리는 3일에 맞춰서 오기 때문에 문제없이 만날 수 있었다. 힘겹게 기말고사를 마치고 1주일 뒤에, 드디어 나는 난생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벗어났다.


 다사다난했던 암스테르담에서 환승을 하고, 2시간 가량 비행시간을 보내자 아래로 아이슬란드가 보이기 시작했다. 현지시간이 밤 11시 30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하늘에는 어둠이 들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백야였다. 비록 구름이 잔뜩 껴있었지만, 분명히 밤이라고 할 수는 없는 날씨였다. 그렇게 발을 딛는 순간부터 상이한 환경을 몸소 느끼며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비행기에서 그리 많이 잠들지 않아서 숙소에 가서 바로 뻗을 줄 알았으나, 여행만 오면 아침형 인간이 되는 이상한 체질로 3시간정도의 수면을 가진 뒤 눈이 떠졌다. 가져온 라면과 밥으로 아침을 먹은 뒤, 새벽부터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의 중심부로 향했다.

 



 

 새벽인지라 관광객과 현지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온함 속에서 레이캬비크를 둘러볼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날씨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5분만 기다려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날씨가 변화무쌍하다는 말이다.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할그림스키라캬 교회를 시작으로 특색있는 디자인을 가진 대형 공연장 하르파, 시청 앞 트요르닌 호수 등 둘러보는 와중에 얇은 비가 내리고 멈추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 와중에 멍청하게 카메라를 들고 비를 맞아 아이슬란드에 도착한지 하루 만에 메모리카드가 고장났다. 여분 메모리 카드를 들고오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지만, 오히려 첫 날에 고장난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여행 막바지에 고장났으면 전부가 사라지는 것이었으니.

 

 렌트카를 예약한 날이 찾아왔고, 도착한 친구를 태워 아이슬란드의 서부인 스나이펠스네스 반도로 향했다. 타지에서 마치 동네 산책하는것 마냥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와중에 레이캬비크를 벗어나자 차량이 하나 둘씩 안보이기 시작했다. 도로 옆으로 펼쳐진 보랏빛 꽃들과 가까워지는 깎아놓은 듯한 산들, 꼭 3마리씩 뭉쳐 다니는 양들, 잿빛 화산 지대, 이름 모를 폭포들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자연은 우리가 감탄사를 내뱉게 하면서 자꾸 차를 멈추게 만들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촬영 배경이었던 그룬다피요르드, 스티키쉬홀무르에 들러 잠시나마 영화의 기분을 되살리기도 했다. 다음 날에는 케플라비크 아래 쪽에 있는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이 대면하고 있는 Bridge Between Continents에 다가가 다른 두 판을 밟아봤다. 근처를 돌아다니며 레이캬비크로 돌아와 숙소에 짐을 푼 뒤, 우리는 레이캬비크의 번화가인 뢰이가베구르 거리에 있는 한 펍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나왔다. 꽤 오랜 시간 펍에서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나왔을 때 여전히 아이슬란드의 백야는 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밤을 새버린 건지 시간이 멈춘 건지,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며 숙소로 돌아왔다. 렌트카를 반납하는 날, 역시 새벽부터 일어나 일정을 어떻게 할까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는 각종 박물관을 보고 싶다고 해서 시내에 내려주고, 나는 반납시간까지 드라이브를 즐기기로 했다. 운이 좋게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날씨로 평온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한창 운전을 하던 와중에 로터리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는 스페인 사람을 태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스페인어 중 생각나는 것은 3문장 밖에 없었지만, 그 스페인인은 그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다. 서로 잘 못하는 영어로 소통하려 했던 그 시간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레이캬비크로 돌아와 다시 만난 친구와 전통음식인 양머리를 힘들게 먹었고, 친구는 다시 독일로 돌아가면서 나는 다시 홀로 남은 여행을 맞이하게 됐다.


 친구를 보낸 후에는 미리 예약했었던 투어를 다녔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코스인 골든써클 (△굴포스 △게이시르 △싱벨리어 국립공원)을 다녀왔다. 황금폭포라는 뜻의 굴포스는 2층으로 나뉘어 물이 떨어지는 장관을 뽐냈으며, 간헐천을 의미하는 게이시르는 높이 솟구칠 때마다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화창한 날씨의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1시간이 관광시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넓고 아름다웠다. 남부를 구경하는 투어에서는 부서지는 물살 속 보였던 무지개가 인상적이었던 스코가포스, 폭포 뒤로도 들어가 홀딱 젖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셀라얀드포스, 검은 모래 해변이 인상적이었던 비크, 마지막으로 빙하가 호수로 떠내려온 검정, 옥색, 백색 등 다양했던 요쿨살론의 빙하들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보트를 타고 요원이 떠다 주는 빙하를 맛보는 특별한 경험도 잊을 수 없다. 출국 전 에메랄드 빛 온천인 블루라군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공항 근처 숙소로 돌아와 귀국 준비를 했다. 가방을 싸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는 아이슬란드인들이 부러웠다. 정말 여기서 평생을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마음 한켠 작은 소망으로 남겨둔 채, 끝나지 않는 하루의 연속 같았던 8일간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잠에 들었다.


 귀국 날, 이륙시간 50분 전에 허겁지겁 일어나 떨어지는 빗물 사이로 캐리어를 끌면서 히치하이킹을 해서 겨우 공항에 도착하고, 경유지였던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순간 공항 내 화재가 발생했다고 대피하는 소동도 겪었다. 평탄했던 여행의 마무리를 꽤나 다이나믹하게 한 셈이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집으로 돌아와 시차적응으로 며칠 고생하면서도 아이슬란드 음악을 들으며 그 느낌을 남기려 했지만, 결국 일상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느낌과 설렘을 손가락사이로 새어나가는 모래처럼 새어나가게 만든다. 하지만 새어나간 추억들은 오히려 일상 속에서 힘을 낼 수 있는 또 하나의 활력제가 되어준다. 내게 단순히 글로는 표현하기 부족한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을 남겨준 아이슬란드에게 Takk1).

 

 

1) Takk는 아이슬라드어로 “감사”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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