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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장애와 범죄의 상관관계?
  • 이예림
  • 등록 2017-09-04 16: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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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면 위로 떠오른 심신장애 관련 감형 논란
얼마 전 발생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 김 양은 최초 검찰 조사에서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그랬다”고 말해 정신병에 의한 심신미약 상태를 의심케 했다. 김 양의 변호인도 그의 범행이 △조현병 △다중인격장애 △아스퍼거증후군 등 정신병에 의한 우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만일 재판부가 김 양 측이 주장하는 심신미약 상태를 받아들일 경우 형량은 최소 10년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그들의 주장과 관련 법률에 대한 내용이 사회의 뜨거운 관심사가 됐다. 이에 관련 법률부터 실제 사례까지 자세하게 알아봤다.


심신미약부터 상실까지, ‘심신장애’란?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심신장애’ 상태란 △인지 △지능 △언어 △정서 △행위 등의 모든 범위에서 적용될 수 있는 다소 복잡한 개념이다. 이는 심신기능면에 장애가 있는 상태를 통틀어서 말하는 것으로, 정도에 따라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과 같은 용어로 나뉜다. 심신상실은 심신장애로 인해 판단력이나 통제력 등을 완전히 상실했을 경우를 말하며, 심신미약은 그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판단 및 의사결정능력에 문제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음주에 의한 심신미약 상태에서부터 중증 정신병에 의한 심신상실 상태까지 그 원인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용어들이 정신의학상의 개념이 아니라 법률학상의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심신장애로 인한 문제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의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를 토대로 한 최종적인 결정은 헌법과 책임에 비춰 법관이 행한다. 즉, 심신장애의 여부는 전문가의 감정 및 이전의 진료 기록 등을 토대로 법관이 결정해야 할 법적·규범적 문제다.

 

행위자의 책임능력에 달린 죄의 무게


 우리나라 형법 제 10조에는 심신장애자를 배려하기 위한 법 조항이 마련돼 있다. 이는 형법의 기본원칙인 ‘책임주의’에 따른 것이다. 책임주의의 기본 원리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위법한 행위를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사건 당시 그 행동이 나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형법상 범죄 성립 요건인 ‘행위자의 책임능력’이 없다고 판단돼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심신미약자의 행위는 범죄이긴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그 형이 감경된다.

 

 그러나 해당 형법이 예외로 적용되는 상황이 있다. 바로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했을 때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라고 정의되는 이 경우에는 심신장애 상태에서 일어난 범죄 상황에 대해 감형이 이뤄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살인을 결심한 책임능력자가 일부러 술에 취해 책임무능력 상태를 스스로 연출하고, 그 후에 그 상태를 이용해 살인을 행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현행법에서는 이처럼 자신의 상태를 조작하려고 음주한 원인행위 당시에 판단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고 볼 때, 음주 행위와 사후의 범죄행위를 합해 살인실행행위로 보고 이를 처벌하기 위한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심신장애자들의 범죄


 실제로 국내에서는 범죄 행위를 저지른 많은 사람에 대해 심신장애 인정에 의한 감형 및 무죄 선고가 이뤄졌다. 한 예로 키우던 애완견에게 악귀가 씌였다며 애완견을 토막 살해하고, 이후 그 악귀가 자신의 딸에게 옮겨갔다며 딸까지 살해한 엄마에게 재판부가 1심, 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살해 혐의는 입증되나 △환각 △피해망상 △조울증 증세로 인한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9년 전 교회 화장실에서 등교 중이던 8살 여자아이에게 끔찍한 성폭행을 저지른 조두순 씨에 대해 법원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이밖에도 일면식 없는 여대생을 강남역 상가 화장실에서 무참히 살해한 일명 ‘강남역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조현병(정신분열증) 증상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받았다. 얼마 전에는 환청을 듣고 인근 교회에 들어가 60대 여성을 폭행한 뒤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된 한 남성이 법원에서 조현병에 의한 심신미약 상태인 점이 고려돼 선처를 받았다.


 반면 피고인이 자신의 심신장애를 주장했음에도 그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 틱 장애의 일종인 ‘뚜렛증후군’을 앓는 남성이 여성을 상습 추행하고 심신미약에 의한 범행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이 “뚜렛증후군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정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소음을 견디기 힘들다며 길에 드러누워 주점 영업방해를 한 60대 남성은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 법감정과 동떨어진 상황 존재해

 

 지금까지 이야기 한 형법 제 10조에 입각한 선고 사례들은 대중들에게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살인이나 성폭행과 같은 강력범죄의 경우에서 말이다. 그 비난의 수위가 점점 더 거세지면서 일각에서는 심신장애 관련 형법 조항이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된다는 지적이 등장했다. 이에 지난 2008년 발생한 일명 ‘조두순 사건’ 이후로 해당 법안이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당시 국회가 ‘성폭력범죄’에 대해서는 형법 제 10조와 11조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특례 규정을 도입했다. 하지만 해당 특례 규정이 단지 ‘성폭력 범죄’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심신장애 관련 형법 조항에 대한 많은 논란이 남아있는 상태다. 지난 2012년에는 서영교 국회의원이 음주나 약물에 의한 감형을 못하게 하는 형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나, 아직까지는 해당 법안에 대한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자의 처벌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외국과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취 감형 기준이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주취는 범죄의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모범형법전에 ‘만취상태를 자초했을 경우에는 항변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술에 취해 범행한 것을 오히려 ‘음주 또는 약물 남용에 의한 범죄 행위’라고 여겨 가중 양형 요소로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해 명정상태에 빠져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제대로 처벌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만취자를 처벌할 수 있는 ‘명정죄’를 따로 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와 심신장애를 가졌다는 사실 사이의 관련성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심신장애 관련 감경 조항 또한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심신장애자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줄 필요성 또한 우리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신장애 관련 감형 기준에 대한 논란은 과거부터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하루빨리 관련 법률이 보다 명확하고 납득 가능한 기준을 지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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