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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오면…
  • 편집국
  • 등록 2024-05-08 09:04:45
  • 수정 2024-05-08 09: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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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섭(산학협력단) 조교수


 이 글이 지면에 실릴 즈음엔 4월이 다 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해마다 4월이 오면, 제주 4.3 사건이 생각나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기억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기억하며, 미래를 위한 희망과 평화를 바라보는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제주 4.3 사건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그 비극적인 충격과 함께 우리의 사회와 정치에 미친 영향은 여전히 기억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재작년 가을 필자에게 제주 4.3 평화공원에 설치할 기념 조형물에 대한 디자인 의뢰가 있었다. 나 역시 이 사건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던 터라 관계자의 설명과 제작 의도 등을 협의하며 여러가지 디자인 안 중 사진과 같은 최종 시안으로 결정하여 제작하게 되었다. 한 인간의 삶보다 훨씬 긴 수명의 재료를 찾던 중 초고성능콘크리트라는 소재를 알게 되었다. 초고성능콘크리트(UHPC-ultra high performance concrete)는 프랑스(1994) de Larrard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고, 현재 국내에는 한 두 업체에서만 대형 성형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소재는 일반 콘크리트에 비해 강도과 내구력이 압도적으로 좋아 일반적으로 수명이 200년 이상 유지된다고 한다.


 

 제주 4.3 사건의 상징으로 동백꽃과 백비가 있다. 차가운 땅으로 스러져간 동백꽃은 제주 4.3의 영혼들을 상징한다. 새빨간 꽃잎은 초고성능콘크리트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붉은색을 조색하여 제작하였다, 동백꽃의 유기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precast concrete ; 완전히 정비된 공장에서 거푸집에 주형 방식으로 제조된 콘크리트 또는 콘크리트 제품. 공기의 단축, 공사비의 절감, 품질 관리의 용이, 내구성 증대 등의 장점이 있다.) 공법으로 제작하였다. 동백꽃잎 형상의 조형물과 16미터나 되는 백비를 경기도 평택에 소재한 공장에서 제주도까지 운반하는 일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여기서 쉬는 관람자는 동백꽃 잎에 몸을 누이고 그 날의 영혼과 그날의 아픔을 공감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하고, 흩날린 꽃잎(사실 동백꽃은 꽃송이 전체가 떨어진다.)이 무념히 떨어진 듯 설치하였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에는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4.3백비, 이름 짓지 못한 역사(Unnamed Monument) 백비(白碑).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 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분단의 시대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리라.”고 씌여있다. 필자는 이름 짓지 못한 백비 역시 약 16미터 길이의 초고성능콘크리트를 재료로 제작하였고, 평화공원에 설치하였다. 이 비에는 “백비(白碑)와 그림자 길 – 핏빛의 기억을 삼키고 먼 미래의 바른 이름을 기다리며…” 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다. 이를 통해 억울하게 스러져간 이름 없는 제주도민의 이름을 기억해 내고자 하는 역설적 희망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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