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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호 특집] 동문 출신 근무자를 통해 바라보는 본교의 변화
  • 정가은 기자
  • 등록 2024-04-17 09: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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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본교로 돌아온 동문의 이야기
대학을 졸업하면 학생들은 동문이란 이름으로 사회로 진출한다. 하지만 그중, 경기대학교 교수와 직원으로 다시 본교에 돌아온 동문이 있다. 이에 본지는 동문 출신 △총장 △교수 △직원과 인터뷰를 진행해 본교의 옛 모습을 돌아보고 이후 발전을 위한 방안을 들어봤다.

■ 11대 이윤규(회계·85총장

 


Q. 학생부터 총장까지 약 45년간 경기대학교와 함께하고 있다달라진 본교의 모습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서울캠퍼스의 옛날 모습은 지금과 유사하다. 서울캠퍼스는 위치 특성상 건물확장이 어렵다. 내부 리모델링을 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이 예전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반면 수원캠퍼스는 외형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과거 수원캠퍼스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으로 제2강의동(성신관)과 중앙도서관 건물 정도가 전부였다. 현재 후문 부지의 공과대학 건물이 위치한 곳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예술체육대학 부지는 예비군 훈련장이 위치했다. 도서관 지하에는 목련하우스라는 학생 식당이 있어 300원에서 500원에 학식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광교 호수 쪽에는 원천 유원지가 있었다. 날이 좋으면 수원 외곽에 있는 딸기밭과 포도밭에 가서 어울리는 학생도 많았다. 제1강의동(진리관)과 예술체육대학 건물이 지어지고 점차 발전되면서 지금

은 거의 50개에 가까운 주요 건물이 존재한다.

 

Q.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활동 및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보통 대학에 오면 학교에 남아 자신을 발전시키거나 좀 더 자신에게 맞는 대학으로 옮겨 그곳에서 노력하는 학생으로 나뉜다. 고민하긴 했지만 본교에 남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대학생활을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잠을 자도 도서관에서 잘 정도로 늘 도서관에 머무르며 학업에 힘을 쏟았다. 3학년 때는 회계학과 회장을 맡았다. 체육대회를 진행하면 선배들이 후배들의 훈련을 봐주고 이에 회계학과가 많은 우승을 차지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보다 학과 중심적인 경향이 있어 학과 활동이 있으면 전부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학과 MT를 가도 대다수가 참여할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기에 학과 생활이 기억에 남는다. 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높여야겠단 생각으로 다양한 어학 시험을 치르는 등 최선을 다했다. 좋은 친구들과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돌이켜보면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보낸 것 같다.

 

Q. 동문 선배로서 바라본 경기대학교의 사회적 입지와 장점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다


 1979년 입학할 당시에는 예비고사 제도가 있어 서울권 예비고사를 통과한 사람들만 서울권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이를 통과한 사람들이 본고사를 치르면 대학이 정해지는 것이다. 과거 서울캠퍼스만 있었던 본교 역시 서울권 예비고사를 합격한 사람들이 올 수 있었다. 이에 본교의 크기는 작았지만 현재 사회에서 선두 주자가 된 우수한 선배들이 많이 있다. 지금도 고등학교 한 교실에서 상위 20% 정도 수준의 학생들이 본교에 들어올 수 있다고 알고 있다. 대학의 학생 수는 본교의 영향력 등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지표다. 대학의 학생이 1만 명이 넘으면 별도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 본교의 총 학생수는 대학과 대학원을 합쳐 약 1만 5,000명 정도다. 이는 인건비 등의 기본적인 운영비를 메울 수 있어 타 대학에 비해 저렴한 등록금이 가능한 이유다. 이외에도 본교는 광교산 자락에 있어 광교산과 저수지가 바로 근처에 위치한다는 것도 크나큰 장점이다.

 

Q. 총장님께 경기대학교가 가지는 의미와 대학의 발전을 위한 △학생 △교수 △직원 △동문의 역할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나한테 경기대학교는 ‘삶’이다.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5년을 경기대학교와 함께 달려왔다. △기획처장 △재무처장 △총장으로 위치가 변할 때마다 가장 먼저 청소하는 것도 내 집처럼 아끼고 삶의 터가 된 본교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본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생 △교수 △직원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교수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연구자로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학생은 이에 맞춰 공부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직원은 부족한 시설을 지원해 주는 등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또한 총장은 좋은 교수를 채용하고 항상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동문의 꾸준한 관심도 중요하다. 동문들에게 장학금을 많이 지원해달라고 요청을 드렸다. 실제로 동문회장이 올해 약 1억 원을 본교에 지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지금이 어려운 시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늘 어렵다. 그러나 모든 시대를 통틀어 환경은 계속 변해왔고 선배들 시대부터 지금까지도 어려움은 항상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어려운 점이 생길 때는 돕는다면 더욱 발전한 대학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시큐리티매니지먼트학과 김현호(경호안전·09교수

 


Q. 학창 시절과 비교해 현재 달라진 본교 모습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재학 당시와 외적인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종합강의동 △제2공학관 △교수연구동 등의 건물은 입학 당시만 해도 없었다. 학생회관도 현재의 미래관 위치에 있었으며 이후 2006년에 신학생회관이 생겼다. 종합강의동의 경우 총학생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2008년까지만 해도 계획 수립 단계였다. 후문에는 수원 왕갈비 건물 하나만 있을 정도로 건물이 듬성듬성 세워져 있었다. 밭과 묘지만 있었던 후문 부지를 떠올리면 식당가 등 많은 시설이 생긴 점에서 상당 부분 변했음을 알 수 있다.

 

Q.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활동 및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군대를 다녀온 뒤 체육대학 내 수영 동아리 회장을 맡았다. 이후 학과 회장을 맡았고 4학년 때는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동아리 △학과 △총학생회 행사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여럿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학생들의 의견을 본부에 많이 전달할 수 있었다. 2009년도에 체육대학 교수 부족 문제가 있어 당시 체육대학 회장이 제2강의동(성신관) 앞에서 20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과 단체로 시위를 진행한 기억이 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시위 이후에 교수 채용이 이뤄졌다. 이외에도 학생들을 위한 복지요구, 구조조정 문제로 인한 본부 항의 방문 등 여러 이슈에서 당시에는 학생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지금보다 수월했던 기억이 있다.

 

Q. 경기대학교가 가지는 의미와 대학의 발전을 위한 △학생 △교수 △직원 △동문의 역할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본교는 나에게 모교이자 직장인 만큼 또 하나의 자신처럼 느껴진다. 물론 본교에는 경기대학교를 사랑하고 애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누구보다 △학교 △체육대학 △학과에 애교심을 갖고 있다. 이에 학생들 상담을 진행할 때 단순한 진로 상담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교수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외부와 지리적인 이점을 넘어 본교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발전의 여지가 충분한 대학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학생 △교수 △직원이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또한 서로의 애로사항을 잘 모르기에 각 집단은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학생지원팀 황병호(기계시스템공학·16팀원

 


Q. 학창 시절과 비교해 현재 달라진 본교 모습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시설적인 측면이다. 대운동장은 잔디가 없어 모래 바닥이었다. 지금 도서관은 리모델링을 진행해 카페처럼 꾸며놨지만, 당시에는 독서실이 연상되는 딱딱한 분위기였다. 대학혁신지원사업 등 여러 사업을 통해 재학 당시보다 굉장히 발전한 모습을 보면 내가 재학할 때도 이런 시설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학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의 측면에서도 각종 시도와 변화가 보인다. 학사제도 선진화위원회, 원격교육 관리위원회 등 여러 위원회에서 학생을 위원으로 포함하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이 여럿 보인다.

 

Q.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활동 및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1학년 학과 대표 △2학년 공과대학(이하 공대) 학생회 국장 △4학년 공대 회장을 역임했다. 1학년 때는 잘 몰랐지만 2·4학년 학생회 활동을 하며 학생들의 복지를 증진하는 사업을 직접 할 수 있었던 점이 의미 있었다. 공대 학생회장을 맡았을 때 한창 광교역이 지어지던 시기로 역명을 광교역과 경기대역 중 무엇으로 할지가 주된 이슈였다. 당시 교직원과 학생이 힘을 합쳐 경기도청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이외에도 취업동아리 KCCP 활동을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한 학기 동안 KCCP에서 직접 활동하고 그 후 서포터즈를 하면서 동기와 후배들이 더 잘 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맡았다. 

 

Q. 경기대학교가 가지는 의미와 대학의 발전을 위한 △학생 △교수 △직원 △동문의 역할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그동안 하고 싶은 걸 주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교수 △직원 △친구 △동문 선배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동문 선배로서 그동안의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을 가진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하지만 학생으로서 학교를 다닐 때와 달리 직원이 되니 예산 및 정책 등 전반적인 본교의 여건을 고려하게 됐다. 학생회장을 해보기도 했던 만큼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대학의 입장을 학생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고 객관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고려해 주면 경기대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고 다수가 이점을 누릴 수 있는 학교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정가은 기자 Ι 202210059@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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