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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시사회] 악지의 묘를 파니 험한 것이 나왔다
  • 임현욱 기자
  • 등록 2024-03-04 10: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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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수와 역사에 얽힌 어지러운 이야기
오컬트 장르의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에서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 <사바하>에 이어 지난달 22일 <파묘>를 개봉하며 오컬트 3부작을 완성했다. 제74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한국 오컬트의 저력을 보여주며 박스오피스를 휩쓴 영화 <파묘>, 본지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를 관람하고 기자들의 견해를 공유해봤다.

 


평점

수민: 복잡한 민속학 소재에 비해 다소 불친절했던 설명

정빈: 다양한 요소를 가미한 색다른 시도, 하지만 정작 완성된 요소는 없었다

: 전·후반의 아쉬운 격차를 배우의 연기력이 심폐소생한 기분

현욱: 풍수지리 아니랄까 봐 내용마저 산으로 가버린 작품

 

한 줄 평

수민: 토속신앙의 나라에 MZ무당의 등장이라 재밌어지겠네

정빈: 사제들보다 아쉬운 무당과 지관의 활약

: 관뚜껑을 열었더니 튀어나온 건 다름 아닌 파워레인저의 정령

현욱: 오컬트 기대하고 가서 보고 온 항일영화

 

Q. 한국의 미신을 다룬 영화 <파묘>, 자신의 삶 속에서 미신이란?

 

수민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는 특히 미신과 깊은 연관이 있죠. 장례식에 다녀온 후에는 소금, 팥 같은 것을 뿌리거나 임산부 혹은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조문에 가지 않는 등 21세기에도 미신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정빈 평소에 저는 종교를 많이 믿는 편이 아니었어요. 근데 제가 정말 원하는 바가 있을 때는 순간적으로 종교에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영화에서 명당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려는 장면은 조금 더 단적인 예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는 구석 하나만으로도 마음에 안정을 얻기 마련이잖아요.

예로부터 어른들께서 잔소리처럼 말씀하시던 미신이 떠오르네요. △문지방을 밟지 마라 △숟가락을 밥에 꽂지 말아라 △다리 떨지 마라 같은 생활 밀착형 미신이 제일 먼저 생각났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미뤄봤을 때 풍수지리가 단순히 영화의 소재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깃들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어요.

현욱 이사는 ‘손 없는 날’에만 간다든지,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갈 때 팥을 뿌린다든지. 요즘에도 미신을 믿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본교 소속의 학과나 단체에서도 학기 시작에 앞서 해오름제를 드리는 것처럼 말이죠. 동아시아가 전반적으로 미신에 친숙하다고는 하지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Q. 영화 속 장재현 감독 특유의 한국식 유머가 등장하는데 어땠는지?

 

수민 무당이라고 하면 대개 고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봉길(이도현 분)이 이어폰을 끼고 운동하는 모습, 화림(김고은 분)이 컨버스화를 신고 굿을 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오늘날 한국 문화와 토속신앙의 비율을 적절히 맞추려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빈 극 중 영근(유해진 분)은 기독교인이지만 장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계속 토속신앙에 몸을 담게 되잖아요. 이 과정에서 갑자기 아멘을 외친다든지, 성경 구절을 읊는다든지 지속적으로 기독교적 면모를 보이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여러 종교가 혼합된 게 한국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 역시 민속학을 다루는 직업의 경우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는 편견을 깬 것이 영화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무당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영화 후반부에 상덕(최민식 분)이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불현듯 딸의 결혼식을 걱정하는 장면은 오직 한국인을 위한 유머 코드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현욱 말을 이어가 보자면, 무당, 풍수지리처럼 토속적인 분위기의 영화는 주로 불교 분위기가 강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장의사 영근은 정작 기독교였다는 것이 저한테 꽤 웃긴 점으로 다가왔어요. 유해진 배우 특유의 유머 감각과 독특한 설정 탓에 흐름의 정돈이 필요한 몇몇 장면에서 관객들이 조금은 마음 편히 관람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Q.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수민 저는 개인적으로 본격적인 파묘에 앞서 음습한 산을 오르는 장면이 생각나는데요. 여우가 나오고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딱 묘지를 비추는데 악지라고 소문난 데에 비해 묘지가 꽤 초라해서 별거 아니겠네 생각했어요. 그런데 땅을 파다 보면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에 영화의 서막이 가장 인상 깊으면서도 긴장감이 넘쳤던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빈 영화의 주제가 파묘다보니 숲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요. 영화 후반부에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큰 고목이 하나 등장해요. 정체가 드러난 요괴를 물리치기 위해 그 나무를 이용하게 되는데, 그때 나무에서 피는 연기와 웅장함이 요괴와 대비되는 느낌을 줘서 기억에 남았어요.

초중반에 나온 대살굿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이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공포를 느꼈던 장면이기도 했어요. 살벌한 굿판 속 화림의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날이 선 칼을 몇 개씩 깔아두고 △돼지를 썰고 △얼굴에 피 칠갑을 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영화라서 조금 더 자극적이고 수위 높은 굿판을 연출했을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충격적인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현욱 저는 요괴가 관을 부순 뒤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요괴가 등장한 이후 염불을 외우면서 불길에 온몸을 휩싸인 채 하늘을 도는 장면이 있어요. 이때 4명의 주인공이 저마다의 주마등을 보는 장면이 연출에 있어 디테일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그 상황의 혼란스러운 느낌을 잘 살린 것 같아 인상적이었어요.

 

Q. 신비스러운 공포 연출이 핵심인 오컬트, 한국 오컬트의 정수를 잘 보여준 것 같은지?

 

수민 소재 자체는 굉장히 한국적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면서 점점 영화의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고편에서 보여줬던 굿 장면의 한국적인 느낌을 끝까지 끌고 나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 못내 아쉬웠습니다.

정빈 저도 마찬가지로 후반부에 유독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심리적 자극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녹여내려고 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재현 감독의 전작들만큼 제 마음을 동요시키진 못했던 것 같아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적어도 전반부만큼은 파묘와 오컬트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앞선 다른 분들처럼 후반부에는 영적인 존재와 사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귀신의 형상이 다 드러나고, 등장인물들이 물리적 공격을 받으면서 되레 잠재적인 두려움이 전부 사라진 듯했어요. 애니메이션 악당을 보는 느낌이 조금 더 강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현욱 그러니까요. 요괴가 흐름을 깬 것 같다는 느낌이 정말 강렬했던 것 같아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이 있다면 영화가 전체적으로 2부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걸 꼭 염두에 두고 보셨으면 해요.

 

Q. △지관 △무당 △장의사 등 다양한 직업이 등장하는 이 영화,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있다면?

 

수민 가장 인상적이었던 캐릭터는 화림이었어요. 젊은 나이에 무당이 됐다는 설정도 색달랐고 특히 김고은 배우의 세련된 무당 연기가 기억에 남았어요. 화림은 무당 특유의 기 센 면모와 비즈니스맨의 능글맞고 유함이 합쳐진 캐릭터 성을 띄다 보니 상덕, 영근과도 좋은 케미를 선보였죠. 후반부에는 봉길을 향한 의리와 정으로 몰아붙이는 추진력 또한 무척 매력적이라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화림에게 더 눈이 갔어요.

정빈 영화 속 장의사였던 영근이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어요. 단순 풍수사와 무당만 있었다면 무겁기만 한 분위기였을 것 같은데, 영근이 지관인 상덕을 보조하고 지관과 무당 둘 사이에서 감초 역할을 확실히 한 것 같아요.

저는 화림의 보조역할을 하는 봉길의 캐릭터가 기억에 남아요. 영화가 전개되면서 단순 보조를 넘어서 극 중 많은 활약을 하고 스승인 화림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입체적인 캐릭터로 다가왔어요. 또한 후반부에 야구선수라는 꿈을 가진 과거사가 드러나면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해지는 캐릭터이기도 했어요.

현욱 상덕은 평소 제가 알던 일반적인 지관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흙을 직접 맛보며 토지의 상태를 살피고 곁눈질로도 유해에서 무슨 물건이 없어졌는지 알아맞히는 장면을 보고 그가 평범한 지관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어요.

 

이수민 기자 leesoomin22@kyonggi.ac.kr

이정빈 기자 202310796@kyonggi.ac.kr

정민 기자 wjdals031004@kyonggi.ac.kr

임현욱 기자 202310978lh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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