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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메인] 거리를 지배하는 외국어 간판들
  • 임현욱 기자
  • 등록 2024-03-04 10: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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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현의 자유와 세계화 속 무너지는 한국어 간판
최근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외국어로 된 간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외국어 간판들을 보고 있자니 한국인지 해외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 간판과 메뉴판을 보고 있는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해 현재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언어 잠식 현상의 심각성을 알아봤다.

 

불필요하게 늘어나는 외국어 표현들

 

 외국어 간판의 도심 점유율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언어 잠식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언어 잠식이란 외국어나 외래어가 남용되며 우리말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러한 언어 잠식 문제가 처음 제기된 곳은 다름 아닌 한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지난 2022년 방송심의기획팀이 공개한 ‘2021 방송언어 조사자료집’에 따르면 2019년부터 2년간 집계된 불필요 영어 자막은 5,809건에 달했다. 당시 기획팀은 방송언어의 잠식이 외국어가 낯선 시청자들을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외국어를 더 많이, 더 자연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왜곡된 인식을 부추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전망한 미래는 곧 현실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서울의 한 유명 카페에서 벌어진 ‘M.S.G.R’ 사례다. 충분한 설명 없이 적힌 영문 메뉴에 고객들은 마땅히 의문을 품었고, 추후 ‘M.S.G.R’이 미숫가루의 두문자어 표기였음을 알게 된 이용객들은 이를 크게 비난했다. 이 밖에도 메뉴나 간판에 의미없이 기재된 외국어 표현은 외국어에 취약한 어린이, 노인을 넘어 주 고객층인 청년세대마저 혼란을 겪어 언어 문화의 변화가 촉구되고 있다.

 


외국어 간판, 문제없을까?

 

 실생활 속 파고든 언어 잠식 현상은 통계를 통해 크게 두드러졌다. 지난 2021년 한글문화연대가 경인, 부산 등 주요 도심 13곳의 간판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약 18%가량이 한글과 한국어가 아예 표기되지 않은 외국어 간판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한글 간판은 전체의 약 46%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현 사태를 처벌할 국내법이 아직 마련되지 못한 것일까. 상권의 간판 등을 다룬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제12조 2항에 따르면 상가 간판은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에 맞춰 한글로 표기하되 외국어로 표기할 경우 한글과 병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시, 업주에게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법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국어 간판을 규제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예외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동 시행령 제5조에서는 면적 5m² 이하의 규모, 4층 이하 등 일정 조건 및 특별한 사유를 만족할 때는 외국어만 표기하는 것도 허용된다. 대부분의 국내 소상가가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있고 지자체의 전수조사도 적극적이지 않아 대다수의 전문가는 외국어 간판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이 어렵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외국어, 단순 상술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는 이 같은 외국어 간판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어만을 사용하는 단일 언어권의 사회에서 다른 언어가 간판으로 사용되는 것은 크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대표는 “언어 잠식 현상이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세대가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도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언어 잠식을 해결하기 위해서 소비자층의 움직임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외국어 간판에 대한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 대표는 “상인들 또한 상권 전체의 특성을 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국인은 불편함 없이,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멋을 드러낼 수 있는 방향으로 상권을 변화시키다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사진 이수민 기자 leesoomin22@kyonggi.ac.kr

 임현욱 기자 202310978lh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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