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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이 줄 수 있는 서사의 모든 것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12-07 11: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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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꽉 막힌 명절의 찻길이면, 어린 시절의 기자는 뒷좌석의 작은 모니터로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이웃집 토토로’를 쳐다보다 멀미에 못 이겨서 잠들기 일쑤였다. 기자는 언젠가 열려있던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살살 앞머리를 건드리기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때 기자의 귀를 때린 것은 잔잔한 동화 같던 토토로의 음악과는 사뭇 다른 감성의 다이나믹 듀오 1집이었다. 기자가 난생 처음 ‘스킷(skit)’ 트랙을 맛 본 순간이었다.


 ‘스킷’은 ‘짧은 연극’이란 뜻이다. 알앤비나 힙합에서는 ‘노래 중간 중간에 지루하지 않도록 삽입하는 상황연출’로 정의되고 있다. 이는 음악을 부드럽게 마무리 짓거나 다음 곡의 예고편 정도로 앨범 안에 삽입되곤 한다. 스킷은 특히 서사가 담긴 앨범의 듣는 재미를 한껏 돋구는데, 영화나 소설에 버금가는 감상의 경험을 선사하기에 가급적 스킷을 포함한 트랙들은 끊임없이 이어 듣는 게 좋다. 


 [2 Many Homes 4 1 Kid]는 저스디스(Justhis)의 첫 정규작이자 스킷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시나리오 중 하나다. 긴 제목 탓에 ‘2MH41K’ 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은 그가 레이블 없이 홀로 활동했던 인디펜던트 시절에 발매한 앨범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손때가 남아있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묶여서 구성됐는데, 그의 어린 시절부터 앨범이 발매될 당시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았다. 


 앨범의 제목과 전개 방식에 드러난 주제는 직관적이다. 개념적인 변화의 단계인 ‘Homes’를 4개의 스킷으로 구분하고, 그 사이에 개인이 겪은 상황과 변화를 그려냈다. 즉, ‘Homes’는 진짜 집이 아니라 사고방 식을 토대로 형성된 개념으로써의 집이다. 


 ‘2MH41K’는 불편한 표현이 겨울 감기에 터진 콧물처럼 쏟아진다. 물론 이에 대한 나름의 해소책으로써 모든 것이 하나의 큰 극임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시선을 잔인할 정도로 견지한 3번째 트랙은 최면치료의 잔상임을 직전 스킷 트랙 ‘Home. 1’으로 알리고, 이어지는 ‘Home. 2’로 가해자가 결국 사고로 코마상태가 됐음을 암시하는 식이다. 가족을 향한 혐오와 애정을 섞어버림으로써 상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탠딩 코미디의 일부를 옮겨온 마지막 트랙 ‘Justhis’는 사실상 가장 뚜렷한 그의 항변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하드코어한 힙합 음악을 만날 때면, 어째서 엄마가 지루한 장거리 운전에도 뒷좌석에 앉은 두 꼬맹이가 잠들 때까지 그리도 좋아하셨던 힙합을 틀지 않았는지 이해된다. 불편한 표현들이 난무하는 힙합으로부터 우리 동심을 지켜낸 것일까. 엄마의 사랑스러운 헛수고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생각해보면 기자에게도 참 많은 집이 있었다. 그건 △사랑하는 엄마이기도 하고 △힙합이기도 하고 △백 번은 들었을 이 앨범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모전자전의 음악 취향은 토토로로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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