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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 영웅 혹은 범죄자, 법치주의 사회의 사적 제재 딜레마
  • 박상준 수습기자
  • 등록 2023-11-23 16: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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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는 처벌은 정당한가
지난 6월, 한 유튜버가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알려진 묻지마 폭행 사건 피의자의 신상을 불법적으로 공개하면서 사적 제재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피의자의 처벌 수준에 의구심을 가지던 사람들은 열광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는 불법인 사적 제재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대립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사적 제재의 실태를 알아보고자 한다.

지연된 정의가 야기한 사적 제재


 2010년 신상 공개 제도 도입 이후로 현재까지 피의자 신상 공개에 대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가 총 76차례 열려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49명이다. 경찰과 검찰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 요건을 충족하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 기준이 없는 추상적이고 애매한 조항으로 인해 신상 공개 때마다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한 사적 제재가 이뤄지고 있어 사회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는 부족한 처벌 때문에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면서도 신상 공개라는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며 정당성을 부여한 결과다.


한국 사회, 사적 제재의 급부상과 그 원인


 그 외에도 이른바 ‘참교육’, ‘정의 구현’ 콘텐츠가 미디어 시장에 쏟아지며 사적 제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sk커뮤니케이션즈에 따르면 성인 7,745명을 대상으로 ‘범죄 가해자의 신상 공개·저격 등 사적 제재’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약 93%의 응답자인 7,336여 명이 ‘사적 제재 찬성’이라는 의견을 내며 대다수가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은 상황의 배경으로는 우리나라의 약한 처벌 수준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8월, 압구정역 인근에서 차량 한 대가 인도로 돌진하며 20대 여성이 중태를 입고 뇌사에 빠졌지만 변호사의 신원 보증을 통해 불과 17시간 만에 불구속 입건돼 유치장에서 풀려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한 유튜버가 자신의 채널에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며 여러 사람의 지지를 얻었다.


 이처럼 범죄자들이 더 많은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며 사적 제재를 찬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 파더스’와 같이 법이 있더라도 보호받지 못하거나 복잡한 사법 체계를 활용할 여력이 없는 경우처럼 공익적 목적으로도 사적 제재가 이용될 수 있어 찬성 의견이 더해지고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렇다면 사적 제재, 과연 옳은 것일까? 법치국가인 한국에서 사적 제재는 범죄로 규정된다. 헌법 제12조 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정보통신망법 70조 1항은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공권력 작동의 원칙을 범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발생하며, 사적 제재에 대해 의문을 표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던 지난 2020년,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의 신상을 온라인상에 유포하는 ‘디지털 교도소’가 실제 피의자와 동명이인인 사람의 신상을 공개하는 등 무고한 사람들의 신상을 잇달아 퍼뜨리며, 현대판 마녀사냥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이는 사적 제재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절차를 통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사회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우려했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 마땅한 범죄자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사적 제재를 통해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는 등 일어나지 말아야 할 여러 문제가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 법적 개선은 물론,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시민으로 변모해야 할 때다.


박상준 수습기자 | qkrwnsdisjdj@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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