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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더하기] 힙합이 아니기에 더욱 힙합다워지는 역설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11-08 12: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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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토처럼 갱스터도, 빈민도 아닌 국힙은 정통 힙합이 아니다?
한국 힙합을 칭하는 이른바 ‘국힙’은, 최근 힙합이 ‘쇼미더머니’라는 TV 프로그램으로 소비되면서 대중성을 등에 업은 국내 힙합 음악과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단어로 와전된 채 사용되고 있다. 일부는 국힙이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정통성을 잃은 ‘틀린’ 음악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한다. 이에 본지는 정통 힙합의 뿌리를 되짚어 보며 힙합의 문화적 의의에 대해 알아봤다.

힙합의 정체성, 4가지 요소가 자연히 응집한 평화로운 파티 

 

 힙합의 발원지이자 최악의 게토1)라 불리는 뉴욕 북부 도시 브롱크스는 본래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백인 중산층의 주거지였다. 하지만 1963년,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상권 단절로 인한 집값 폭락이 불가피했고, 집값 대신 화재 보험금이라도 타고자 주민들이 저지른 연속적인 방화에 브롱크스는 생지옥으로 전락했다. 곧 각종 갱단의 아지트가 되면서 가속되던 슬럼화는 다행히 1971년 평화협정 이후 가라앉았다. 그러나 가난에 허덕이는 도시의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문화생활은 전무했다. 이러한 열악함 속에서 골목이나 농구장에 음악 장비를 가져와 노는 ‘블록 파티’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다만 최초의 블록파티에는 디제이가 레코드판을 갈 때 소리의 공백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메이카 출신의 디제이 ‘쿨 허크’가 최초로 선보인 디제잉 스킬이 바로 힙합의 시초인데, 이를 시작으로 △비보잉 △엠씨잉 △그라피티까지 총 4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룬 하위문화가 바로 힙합이다.


디제잉 

 허크는 동일한 레코드판 두 장을 이용해 반주만 나오는 ‘브레이크’ 구간을 반복시켰다. 이를 ‘메리 고 라운드’라고 한다.


■ 비보잉 

 반복되는 브레이크 구간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한 춤꾼들은 ‘비보이(Break Boy)’라고 불렸다. 이후 거리를 무대 삼은 댄스 배틀 문화가 생기면서 이들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 엠씨잉 

 파티의 중심에서 음악의 흐름을 관장하던 디제이들이 흥을 돋우기 위해 비트에 맞춘 추임새를 넣기 시작했다.  


■ 그라피티 

 경제적인 문제로 예술성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이들이 오직 스프레이 페인트와 이미 존재하는 시설물만으로 재능을 뽐낼 수 있게 됐다.


 △브롱크스 지하철 그라피티


방송을 통해 세계로, 경계 없는 장르의 플레이어들

 

 1983년, MTV를 타고 등장한 힙합 그룹 RUN D.M.C는 패션으로써의 힙합을 유행시키면서 힙합은 일부 지역·인종만이 향유하던 로컬 음악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이들의 △금 체인 목걸이 △중절모 △아디다스 신발과 운동복 등은 그들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고, 힙합 그룹 최초로 스포츠 브랜드와의 홍보 계약을 이뤄냈다. 어느새 주류 시장에 정착한 힙합은 1988년, ‘Yo! MTV raps’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미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갔다. 한국에서 힙합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이 맘 때다. 


△RUN D.M.C

 

 1989년, 국내 최초의 힙합 음악 「김삿갓」을 발표한 홍서범은 의외로 건국대 캠퍼스 밴드 그룹인 ‘옥슨80’ 출신의 록커였다. △미국에서도 펑크 록 밴드인 ‘블론디’가 힙합 음악 최초로 빌보드 1위를 달성하거나 △만능 프로듀서 그룹인 ‘015B’가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랩송을 발매하고 △‘신해철’의 1집 수록곡 「안녕」이 대중가요에 랩을 사용한 첫 시도라고 평가받는 등, 사실 초기 힙합에서는 오히려 래퍼가 아닌 아티스트들이 힙합의 조류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다.


힙합은 음악 장르의 이름으로 사용됐을 뿐, 사실은 그 시작부터 블록파티의 4가지 요소가 엉기고 장르의 스펙트럼은 몹시 자유로운 총체적인 문화였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하다.


1) 미국에서 흑인 또는 소수 민족이 사는 빈민가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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