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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분노했는가
  • 김태규 기자
  • 등록 2023-10-16 14: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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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인의 성난 사람들’, 영화의 제목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단지 화가 난 12인의 인물이 주먹으로 싸우는 내용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제외하고는 답답한 방안에서 나가질 않아 그 열기가 스크린 밖으로 느껴질 정도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은 「살인의 해부」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법정 영화 중 하나로, 러닝타임 동안 흑백으로 등장인물들을 비추는 카메라의 구도는 감탄을 자아낸다. 해당 영화의 감독은 「뜨거운 오후」, 「허공에의 질주」 등을 연출한 시드니 루멧으로 사회풍자를 담은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각기 다른 12명의 배심원이 방 안에 모여 유죄가 확실해 보이는 살인사건을 두고 대화를 시작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제출된 자료들과 관련 증거들은 피고인인 소년에게 불리한 정황이었다. 배심원들은 의견을 나누기 전 사건을 검토하고 먼저 투표를 진행했다. 한 명의 배심원만이 무죄 의견을 냈고 그는 자신만의 정갈한 논리로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 무겁고 불편한 열기를 내뿜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유죄를 주장하던 배심원들도 반박에 한계를 느끼고 무죄 가능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윽고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재판부에 제출한다.


“우리에겐 책임이 있습니다.

이 판결로 우리가 득 볼 것도 잃을 것도 없지요.

그것이 우리가 힘을 갖는 이유입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中


 영화 속에서는 새로운 논리로 반박하는 인물을 등장시켜 편견으로부터 고착화된 상황을 깨부순다. 단 한 명의 반대표로 평결이 달라진 소년의 삶도 달라지게 된다. 12명의 배심원은 당시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상징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온 야구팬 △주변에 거들먹대는 증권사 직원 △빈민가 출신 유대인 등 다양한 직업, 인종에 따른 여러 모습으로 연출된다. 미국은 배심원 제도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특히 타 국가들과 다르게 배심원들의 평결이 재판정 내에서 매우 크게 작용해 영향력이 높다.


 그러나 영화 초반 사건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배심원 제도에 대해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자신과 아무런 이득 관계에 얽히지 않은 12명의 인물에게 상황을 좌우하는 힘과 책임을 부여한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강력한 은유이다. 중요한 책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태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사회 관료들에 대한 비판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배심원 제도는 재판 내에서 민주주의를 최대한으로 실현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가장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규 기자 Ι taekue@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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