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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시사회] 잠, 집 그리고 당신
  • 김민제 기자
  • 등록 2023-10-03 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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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친숙한 대상으로부터 밀려오는 가장 높은 차원의 공포
2023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출품작으로 선정돼 전 세계 씨네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 ‘잠’이 지난 6일, 박스오피스로 관객을 만났다. 이에 본지는 봉준호 감독의 극찬을 받은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 잠을 관람한 뒤 각자의 해석과 평론을 나눠봤다.



●평점


지성: 3.5/5 열린 결말이 주는 해석의 즐거움


수민: 4/5 다채로운 구도, 다채로운 디테일, 다채로운 공포 


가은: 3.5/5 초반의 지루함, 하지만 이야깃거리를 많이 남긴 영화 


민제: 4/5 직접적이지 않아서 더 깊게 다가오는 공포


●한 줄 평


지성: 안되면 그냥 때려치우자


수민: 당신의 배우자가 잠에 들었는지 끝까지 의심할 것 


가은: 영화가 선사하는 토론의 장


민제: 어쩌면 인생은 눈 가리고 아웅의 연속


Q.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동안 쉴 틈 없이 전개되는 스토리,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지성: 극 중 눈이 충혈된 수진이 현수에게 ‘밤새 안자고 오빠 자는 것만 지켜봤다’고 말하는 장면이 너무 섬뜩해서 기억에 남아요. 그 장면을 기점으로 수진이 무서워졌어요.


수민: 영화 초반,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는 가훈이 써진 명패가 살짝 삐뚤어져 있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저에게는 그 장면이 앞으로 펼쳐질 사건들에 대한 전조처럼 느껴져서 소름이 돋더라고요.


가은: 저는 수진이 꿈에서 깬 후 사골국을 끓고 있는 냄비를 바닥에 엎어서 뼈를 찾는 모습을 떠올리게 돼요.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 정말 극강의 공포에 달했다는 걸 느끼게 하죠.


민제: 제가 가장인상 깊게 본 장면은 수진이 집을 오컬트하게 꾸며놓고 현수의 행동이 단순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장면이었어요. ‘이게 진정한 광기구나’ 싶었고 동시에 이런 상황에서도 PPT를 만드는 모습이 대한민국 직장인의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 같았어요.


Q.이 영화가 집과 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집 또는 잠처럼 가장 편안한 대상에 공포를 느낀 경험이 있는가?


지성: 저는 종종 제 방에 공포를 느껴요. 방에서 가위를 눌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밤에 자려고 불을 끄면 방이 너무 오싹하게 느껴지고 가끔은 불안하기도 하죠.


수민: 저는 겁을 먹는 부류보다 겁을 주는 부류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새벽에 자다가 저도 모르게 항상 거실이나 화장실 앞으로 자리를 옮기곤 하는데 이 때문에 거실에 있던 가족들이 저때문에 자주 놀라곤 해요.


가은: 저도 수민이랑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예전에 친구들과 한 방에서 잔 적이 있는데 그때 친구들이 제가 자다가 혼자 일어나서 팔을 세차게 휘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극 중 현수의 일이 마냥 남의 일처럼 느껴지진 않았어요. 만약 그때 제가 더 심하게 움직였다면 정말로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민제: 최근에 엄마랑 방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엄청나게 큰 도어록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정말 우리집이 아니면 들릴 수 없는 크기로요. 당시 세간에 흉흉한 소식이 많이 들리던 때라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로 모든 방에 불을 다 켜고 샅샅이 뒤졌죠. 나를 보호해야 할 공간인 집이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극심한 공포가 엄습하게 된다는 걸 체감한 순간이었어요.


Q. 극 중 부부와 같이 가족, 친구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과 서로가 의도하지 않은 일로 계속해서 위기감을 느낄 때, 당신은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가?


지성: 극 중에서 수진이 현수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을 끊임없이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변치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저라면 그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좋은 감정과 신뢰가 지속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수민: 사실 저는 현수가 겪는 몽유병이 사회적 스트레스 탓일 것으로 생각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어요. 만약 위기감을 느낀 사건이 병으로 인한 거라면 누구든 이해심을 발휘할 것이라 생각해요. 또 극 중에서 현수는 계속해서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였기에 더더욱 그런 부분을 감싸 안으려고 했을 거 같아요.


가은: 어쩌면 그 대상이 누구든 사람을 완벽히 믿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 거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현수를 이해하려고 계속 노력했을 것 같아요. 서로 간의 연대감과 포용력이 있어야 가족 공동체의 기틀이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민제: 현수를 향한 믿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점점 거리를 두게 되는 건 불가항력인 것 같아요. 심지어 극 중 수진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위협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잖아요. 과연 그런 상대방을 계속해서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요?


Q. 이 영화에서 특히 정유미의 연기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정유미의 연기가 가장 빛났다고 생각한 장면은 무엇인가?

지성: 저는 3장 후반에서 수진의 안광 잃은 눈을 볼 때 소름이 돋았어요. 그 부분에서 눈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데 ‘눈빛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구나’ 싶었죠. 사활을 걸고 잠을 방해하는 불청객을 쫓아내겠다는 수진의 의지가 가감 없이 드러나는 듯했어요.


수민: 수면 클리닉 의사에게 몽유병의 완치 시기, 완치 여부는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수진의 눈빛 변화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극도로 예민한 상태의 수진이 진료실 내부를 훑는 눈빛이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달까요.


가은: 저 역시 3장이 수진의 연기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랐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수진이 현수를 보며 제발 좀 가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눈앞의 현수를 바라보면서도 그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는 걸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민제: 전 수진이 현수에게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이제 자신을 믿을 수 있냐고 묻는 장면에서 정유미의 연기력에 감탄했어요. 너무 간절해 보이면서도 진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느껴져서 입이 떡 벌어지더라고요.


Q. 봉준호 감독이 영화의 엔딩에 대한 해석을 누설하지 말라고 할 강조할 정도로 이 영화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 영화에서 관객 으로 하여금 여러 개의 해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요소는 무엇일까?


지성: 극 중 미지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수진의 가정을 침범하기 시작한 날짜와 현수의 증상이 시작된 날짜가 맞아떨어진 점이 소름 돋았어요. 수진의 계산이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아예 증거까지 보여주니 관객으로서 참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러나 바로 이 점 덕분에 다양한 해석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수민: 영화의 후반부에 현수가 ‘갈게’라고 말하자마자 아랫집 사람의 눈빛이 바뀌는 점이 큰 반전아 닐까요? 사실 저는 본 영화의 서사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었음에도 그 장면을 보고 ‘이거 정말 오컬트 영화인가?’ 싶어 마음이 흔들렸거든요.


가은: 저 역시 지성이랑 비슷한 의견인데요. 수진의 어머니가 현수의 증상이 미신과 관련됐을 수 있다며 부적을 가져오고 무당을 데려온 후로 현수의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된 것을 보면서 이런 장치가 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민제: 전 1부에서 현수의 연기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한 점을 뽑고 싶어요. 배우라는 현수의 직업 설정을 부각하면서 관객이 현수의 행동이 과연 가식일지 진짜일지 돌이켜 보게끔 하는 목적으로 그 요소를 넣은 거 같더라고요.


Q. 마지막으로 유니크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 해당 영화에서 가장 특이하게 느껴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성: 저는 장을 나눈 점이 특이했다고 생각해요. 간간히 등장하는 검은 화면이 자칫하면 몰입을 깨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을텐데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관객들을 환기시키는 장치가 된 것 같아요.


수민: 각 장을 나눠서 구성한 점이 마치 소설처럼 느껴졌어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구성된 소설의 형식과는 달리 영화 ‘잠’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량의 질주처럼 풀악셀을 밟아 극한의 공포로 관객을 내모는 느낌이라 상당히 독특하게 봤어요.


가은: 영화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로 시작해 후반부가 돼서야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단 점이 신선했어요. 그게 상상의 여지를 더 많이 남겼다고 생각하고요.


민제: 보통의 공포 영화에서는 △귀신 △좀비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다룬다면 이 영화는 직접적인 시각적 공포를 적게 활용하면서 도 루즈해질 틈 없이 전개되는 게 특이했어요. 흔히 말하는 ‘갑툭튀’는 없지만 심리적 공포가 배로 다가오는 느낌이어서 새로웠던 것 같아요.


김민제 기자 Ι k.minje@kyonggi.ac.kr 

이수민 기자 Ι leesoomin22@kyonggi.ac.kr 

홍지성 기자 Ι wltjd0423@kyonggi.ac.kr 

정가은 기자 Ι 202210059@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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