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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랙에 똑같은 100m는 없음을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09-01 17: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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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결승전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역사상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경기는 ‘만화도 이렇게 그리면 욕 먹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적인 경기 내용과 양 팀의 스토리들이 얽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스포츠라는 장르가 출발선부터 불리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만화도 이렇게 그리면 욕 먹는다’라는 이 지점이, 이미 현실의 스포츠가 더 만화 같고 때때로 영화보다 극적인 재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의외의 대박 흥행을 이뤄냈다. 곧 올해의 한국 영화계에는 스포츠 신드롬이 일어났고, △<카운트> △<리바운드> △<드림>까지 연이어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슬램덩크가 불어온 바람에 올라타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기에는 다소 아쉬운 결과물들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영화로서 슬램덩크를 아득히 뛰어넘는 완성도의 작품도 있었다. 전국 모든 극장에 빼곡이 걸려있던 <범죄도시3>의 흥행과 겹쳐 대부분은 개봉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이 영화 <스프린터>가 바로 그렇다. 



 영화는 △세 파트를 거쳐 △세 명의 선수와 △세 명의 조력자들을 조명한다. △왕년 최고의 선수였으나 미련이 남아 여전히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노장 ‘현수’와 그를 묵묵히 지켜봐주는 아내 ‘지현’ △한때 국가 대표 유망주의 페이스였으나, 게을리 시간을 보내면서 기록이 멈춰버린 ‘준서’와 육상부를 없애는 조건으로 정직원 전환이라는 달콤한 제안을 받은 코치 ‘지완’ △현역 최고의 선수지만, 1등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약을 선택한 ‘정호’와 그의 다리를 테이프로 감싸며 의심받지 않게 “2등으로 들어오라”고 지시하는 코치 ‘형욱’까지, 영화가 많은 인물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전혀 산만하지 않다. 끝내 한 트랙 위에 선 세 선수의 10초를 숨 참고 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스프린터>의 앞선 영화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이 캐릭터들의 만화만도 못한 스포츠 성공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감’한다는 점이다. 캐릭터는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됐을 때 살아있게 된다. 


 결국 시작은 감독의 사소한 관찰이었던 듯 보인다. 출발선에 ‘On your mark’하기 전, 10명의 선수들은 “△몇 번 △어디 소속 △누구”와 같은 소개와 함께 손을 들고 나선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저 선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은 없었다. 영화는 말하자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도 주인공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지고, 각종 스포츠 경기에 나선 선수들의 모습까지 새롭게 보인다. 역시 좋은 영화들은 하나같이 감상 이후에도 생각이 뻗어져 나오곤 한다. 

 

 앞으로 어떤 영화가 개봉해도 <스프린터>는 올해 최고의 국내영화 자리를 다툴 것이라 생각한다. 기자의 굳은 확신이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될 누군가에게도 확신을 준 설득이었길 바란다.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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