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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상상의 한계를 넘은 21세기 좀비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07-04 14: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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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맛에 맞게 변주한 ‘우리’ 좀비
‘좀비’가 세계적으로 대중문화를 매료시킨 장르인데 반해, 이제껏 국내는 좀비 열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내 좀비 작품들이 세계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좀비는 어떻게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것일까? 그리고 K-좀비는 어떻게 세계인을 매혹할 수 있었을까? 이에 본지는 같은 의문을 안고 기획된 전시 ‘지금 우리 좀비는 : 21세기 K-좀비 연대기’를 직접 방문해 좀비가 밟아온 길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좀비를 왜 좋아해? 



 본 전시의 1섹션 ‘좀비의 진화’에서는 1932년 <화이트 좀비>를 시작으로 좀비 대표작 12편의 포스터와 영상클립을 통해 좀비의 진화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1968년 개봉한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현대의 우리가 떠올리는 좀비 장르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좀비들의 특징은 세 가지다. △죽었다가 살아난 시체로, 인육을 먹는 괴물이라는 것 △인간 수준의 지능이 없어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고, 몸으로 들이받거나 인해전술로 덮친다는 것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좀비가 된다는 것이다. 


 과거, 좀비는 느린 속도로 밀려오는 재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신체·정신적으로 월등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몰려오는 좀비들을 상대로 이겨낼 수가 없으며 물리면 자신도 좀비가 된다는 점에서 공포 그 자체였다. 또한, 이들은 먹잇감을 물어뜯으러 몰려가는 무지한 대중을 상징하기도 하며, 바이러스가 입을 통해 전달된다는 것과 살아있는 시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메스미디어의 풍자로 해석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교류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인간 사회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가 괴물로 변해버렸을 때 느끼는 절망을 통해 연대감을 뒤집는다는 점도 하나의 포인트다. 호러의 서브 장르에 불과했던 좀비물이 아직까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은 바로 이 공포가 현대인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대의 좀비 장르는 이 포인트들을 놓치지 않은 뼈대 위에 몇 가지를 더 얹어 변주했다. 바로 좀비가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는 좀비부터 브래드 피트가 좀비 블록버스터를 찍기까지


 2002년,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가 그 대표작이다. 이 영화의 좀비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시체들이 아닌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다. 기본 설정을 파괴함으로써 얻은 이점은 두 가지다. 우선, 저예산 영화였던 탓에 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지 못했던 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좀비가 개떼처럼 등장하지 않아도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설정은 공포감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다음으로, 바이러스가 원인인 만큼 직접 물리지 않고도 전염 이 된다는 점이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28일 후>는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이었던 좀비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 기점이 됐다. 2004년 할리우드에서는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새벽의 저주>가 만들어졌는데, 여기 좀비 역시 사냥개처럼 달린다. <28일 후>가 좀비의 트렌드를 바꿔버린 것이다. 클래식과 새로운 트렌드의 적절한 조화, 그리고 비주얼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 고어1) 화면을 뽑아내는 솜씨를 십분 발휘하면서 영화는 대박 흥행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때 할리우드는 좀비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리우드에서는 곧장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좀비 장르의 블록버스터를 찍어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마련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월드워 Z>다. 그러나 <월드워 Z>는 팬들의 박한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제작비가 워낙 막대하다 보니 흥행수익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피하기 위해 장르에서 필수적인 고어씬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관객들에게는 고어씬을 피해야 했던 좀비 영화라고 한다면 금방 떠오르는 비슷하면서도 더 친숙한 작품이 있다. 바로 <부산행>이다. 


<부산행>, 장르에 대한 애정이 맺은 1st 결실 


 1섹션에서는 국내 최초의 좀비 영화 <괴시>를 비롯해 차츰 등장한 국내 좀비물들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부산행> 이전의 그 어떤 작품도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리고 본 전시회의 2섹션, ‘부산행에 오른 좀비’에서는 사실상 K-좀비의 시작을 알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과 그 프리퀄 작품인 <서울역>을 소개하고 있다. <부산행> 촬영에 사용된 실물 의상과 두 작품의 제작 현장에서 사용된 시나리오·스토리보드가 함께 전시돼 있다. 




 좀비물 마니아는 커녕 제대로 된 좀비 영화도 없는 국내 시장에서, 국내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인 <부산행>에 고어씬이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국내 상업영화로서 좀비라는 장르 선택 자체가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특히 <부산행>은 좀비를 무시무시한 존재들로 그려내려는 트렌드를 잘 읽었는데, 좀비들이 떼로 뭉쳐 밀려오는 장면은 <월드워 Z>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은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렸으며 좀비의 독창적인 동작과 속도감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와 함께한 전 세계 <킹덤> 홀릭 


 <부산행>이 K-좀비 계보의 시작이었다면, <킹덤>은 전 세계에 K-좀비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전시회의 3섹션 ‘<킹덤>, 세계를 유혹하다’ 에서는 <킹덤>을 시작으로 K-좀비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 학교는>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킹덤>의 성공은 넷플릭스와의 공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넷플릭스는 세계 스트리밍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로컬의 글로벌화’ 전략을 추진했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나 수위가 높아 영화·방송시장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시나리오들에 눈을 돌린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선택 한 작품이 바로 김은희 작가가 표현 수위 및 제작비 문제로 꺼내놓지 못하고 있었던 <킹덤>이었던 것이다. 


 좀비가 조선의 권력 다툼, 민초들의 투쟁 서사와 결합하고 매혹적인 의상과 풍경이 더해져 <킹덤>은 세계인이 열광하는 신선한 좀비물로 거듭났다. <킹덤>의 뒤를 이어 작년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좀비 시리즈물 <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면서 K-좀비는 흥행한다는 공식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K-좀비 흥행공식, 그 유도과정은? 


 K-좀비의 흥행공식은 어떻게 세워질 수 있었을까. 본 전시회의 4섹션 ‘K-좀비를 말하다’에서는 K-좀비의 성공 요인을 △스토리 △공간 △좀비 디자인 △기술 총 네 가지 측면으로 인터뷰 영상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K-좀비는 ‘서바이벌’에 집중하기보다는 내 가족, 이웃의 모습을 비추며 인간 본연의 정서를 자극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은 “아주 보편적인 감수성 내에서 특이한 일이 일어나야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다이내믹은 K-좀비의 가장 큰 특징인데, 정덕현 평론가는 “액션 연출이 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안무가들이 동원된 실감나는 좀비 액션과 이를 놀라울 정도로 연기해내는 배우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4섹션에서는 ‘전영, K-좀비를 창조하다’라는 영상과, 국내 좀비물들의 명장면을 재구성한 스페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전영, K좀비를 창조하다’는 좀비 동작 안무가 전영이 그동안 창조했던 다양한 좀비 동작들을 직접 시연하는 영상이다. 실루엣으로 나타나는 동작들에서도 각 작품의 특성에 따라 다른 디테일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K-좀비 성공의 핵심이었는지를 증명한다. 


지금 우리 좀비는 




 본 전시회의 마지막 섹션, ‘지금 우리 좀비는’에서는 이제 좀비가 호러와 액션은 물론 △로맨스 △코미디 △ 판타지 △사회 드라마 △SF 등 어떤 장르로도 확장 가능해졌으며, 매체 측면에서도 영화뿐 아니라 △웹툰 △ 소설 △게임 △공연 등에서 사랑받는 소재가 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특히 웹툰이 좀비 영상 스토리의 주요 원천으로 발전 중이었는데, 5섹션에서 소개 중인 <지금 우리 학교는>부터 △<좀비의 시간> △ <당신의 모든 순간>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또한 정명섭의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조예은의 <칵테일, 러브, 좀비> 등 각자의 색깔이 나타난 좀비 소설들은 국내 좀비도 이제는 꽤 다양하고 깊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좀비는 다양한 모습으로 콘텐츠화되는 현대 사회의 공포와 불안 중 하나였으며, 5섹션에 이르러 이제 온갖 것으로 투영 가능한 장르로 진화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즉, 현대 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피로감이 계속되는 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좀비는 앞으로 더 많이, 더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제 좀비는 어떤 새로운 팔색조 같은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그 귀추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글·사진 박선우 기자 Ι 20211024psw@kyonggi.ac.kr 

사진 이수민 기자 Ι leesoomin22@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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