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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더하기] 소리내 우는 법을 잊은 어른이들에게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05-08 20: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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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최고의 정신건강 테라피
매해 봄철이면 자살률이 최고로 높아지곤 한다. 갑자기 일조량이 늘면서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감정 기복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생기와 활력이 상대적 박탈감을 주며 우울감이 증폭된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쌓이는 우울감을 삼켜내야만 하는 현대인들이 처한 상황이 따뜻한 봄이 돼서야 터지는 것은 아닐까. 이에 본지는 우리가 쏟아지는 눈물을 애써 막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전하고자 한다.

그렇게까지 가치가 있어? 눈물의 효과


본지는 20대 또래 청년들의 울음 빈도수를 알아보고자 약 20명의 주변인에게 물었다. 최대 4년 가까이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는 답변까지 받았으며, 최근 울었던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은 대부분 슬픈 영화를 직접 찾아본 경우였다. 그런데 눈물이라는 것이 이처럼 울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양파 껍질을 벗기거나 눈에 먼지가 들어갔을 때 나오는 자극 반응적 눈물에서 치유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해 분비되는 감정적 눈물이 필요하다. 이 눈물은 스트레스 호르몬과 독소가 더 많이 포함돼 밖으로 분비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면역 기능을 강화한다. 이렇게 스트레스 호르몬의 혈중 농도가 낮아지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며, 호흡과 심장박동수를 안정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실컷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데, 이는 실제로 울고 나면 두뇌와 근육에 산소 공급이 증가하고 혈압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속 시원하게 한바탕 우는 것이 소화를 돕고 신체 통증을 완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몸에 좋은 약 마음에도 좋다, 심리치료요법 ‘눈물치료’


이러한 눈물의 치유 효과 덕분에 울음은 하나의 치료법으로 자리잡았다. 인간 감정의 가장 초기 단계 ‘유아기의 고통’을 다시 경험하게 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가리켜 프라이멀 요법(Primal Therapy), 다른 말로 ‘울음치료’라고 한다.


울음치료는 인간 최초의 언어라고 볼 수 있는 울음을 치유의 매개로 보는 치료법이다. 자신의 감정을 울음으로 분출하던 유아기 때와는 다르게, 사회적 제약에 의해 소리내 우는 법을 잊어버려 마음의 병을 쌓아간다. 즉, 마음껏 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약이 된다는 것이다. 한 번은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고 정신건강의 안정을 찾기 위해 억지로, 또는 일부러라도 우는 것이 좋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막상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목놓아 울 수 있는 공간 T.T존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에는 타인의 눈치 보지 않고 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 마련된 T.T존이다. T.T존은 지난 2019년,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한 중년 남성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울음방’이다. TV가 마련된 아늑한 방에서 50분 동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이와 연계된 심리상담도 진행된다. T.T존은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화 예약이 필수다. 이후 담당 상담사가 배정되기까지 약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기자는 직접 T.T존을 방문했다. 간단한 이용 안내와 설문조사를 마치고 T.T존에 들어갔다. 따뜻한 조명의 방 안에는 △인형 △베개 △시계 △공기청정기 △세면대 △휴지 △거울 등이 구비돼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콘센트 선 등 최대한 줄이 될 수 있는 물건을 시야에 보이지 않게 정리해 놓은 점이 마음을 진지하게 만들었다. 기자는 소파에 앉아 TV로 추천받은 영상을 시청했다. 유치한 오기로 참아보려 노력했지만 눈물은 저항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되려 펑펑 울고 조용한 방에서 나왔을 때는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간이우울조사와 함께 T.T존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담당 상담사가 ‘이제 괜찮냐’고 물을 때는 다시 한번 울컥했다.


다만 아직까지 화성에만 존재하는 T.T존은 매뉴얼에 따라 화성시민만이 이용할 수 있다. 이에 현장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은 만약 우울감으로 힘들거나 울음이 필요하다면 각 시에 마련된 자살예방센터를 찾아보는 것을 권했다. 오래전부터 울음치료의 효과가 입증된 미국에서는 프라이멀 요법 센터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전국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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