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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냥 사랑 영화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03-06 09: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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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만 명.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복귀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낸 흥행 성적이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까지 거머쥔 영화의 성적표라기에는 다소 아쉽다. 이 영화가 마주한 흥행 암초는 무엇이었을까.


 장해준(박해일 분)은 부산의 형사다. 구소산 낙사 사건을 맡게 된 해준은 젊은 과부 송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게 된다. 서래를 보자마자 ‘파도가 덮치듯’ 사랑에 빠진 해준은 그녀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가진 채 그녀를 감시하고, 서래는 그런 그의 눈길을 눈치 채고 둘은 자연스레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낙사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지만 해준은 우연히 모든 게 서래의 치밀한 알리바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그 계획의 일부로서 철저히 이용당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서래를 진심으로 사랑한 해준은 사건을 덮고 이별을 고한다. 


 영화는 2개의 파트로 나뉜다. 이미 한 편의 영화와 같은 부산에서의 이야기는 영화의 첫 번째 파트다. 13개월 뒤, 서래를 잊고자 부산을 떠나 이포로 근무지를 옮긴 해준은 새로운 남편과 함께 나타난 서래를 만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두 번째 남편도 시체로 발견된다. 누구도 보여준 적 없었던 이 두 번째 파트의 끝에는 한국 영화 역사상 그 어떤 엔딩보다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산을 싫어하고 바다를 좋아하는 서래가 쌓은 산이 파도에 무너지고, 이윽고 바다로 채워지는 연출은 기자로 하여금 저항 없이 감탄을 자아낸 완벽한 도치였다. 이후 해준을 클로즈업하며 흘러나오는 ‘아다지에토’는 말러의 5번 교향곡 4악장으로,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의 죽음> 삽입곡으로 많이 알려진 곡이다. 아다지에토는 말러가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에게 바친 러브송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베이스에는 점점 어둠과 고 독이 밴 선율이 흘러나오는 이중적인 곡이다. 녹색 또는 청색으로도 보이는 서래의 청록색 원피스가 또 이러한 곡의 느낌과 같다. 설레지만 두려운 현실의 사랑을 은유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문득 이 영화의 흥행 암초는 바로 기자 같은 사람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봉 전부터 쏟아져 나온 평론가들의 찬사들은 온갖 현학적인 표현들로 치장돼 있다. 높은 티켓값 앞에서 고민하던 관객들의 선택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오락 영화로 향한다는 것도 납득 가능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대단함에 대해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았던 기자 역시 많은 문장을 지워냈다. 수식이 필요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스릴러인 줄 알았으나 그저 사랑 이야기였던 이 영화는 그렇게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영화다. 만약 고민을 하고 있었다면 그 고민을 멈추고 당장에라도 넷플릭스를 열어도 괜찮다. 구소산 높이 138층과 맞먹는 138분의 러닝 타임이 끝나고 나면, ‘마침내’ 이 서사의 산봉우리에 다다랐다는 여운을 깊이 남길 것이라 확신한다.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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