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교정의 봄날에 떠오른 생각
  • 편집국
  • 등록 2017-05-08 12:36:41
  • 수정 2017-05-08 12:38:15
기사수정

 

 


 식목일 이후 내린 봄비 는 우리학교의 교화인 백 목련부터 진달래까지 봄꽃 들을 만개하게 해 학교 안의 주변 풍경을 봄이라는 말이 실감나도록 해주고 있다. 방금 도화지에 그린 그림처럼 물감 색 짙은 꽃들 이 눈부시게 피었다. 봄은 계절의 시작이며 만물이 생장하는 기운이 천지에 가득한 시기이다. 1년 중 시작이 라는 말이 가장 잘 걸 맞는 때이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인생에서 청춘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잘 빛나는 시간이 대학 재학기이다. 청춘을 보내고 있는 사람의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점 은 굳이 고사(古事)를 들지 않더라도 동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현실이 그렇게 청춘의 시기만을 논하기에는 만만하지 않은 것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무 엇보다 취업이라는 힘겹고 무거운 사회진출이 학교만 이 아니라 우리사회 모든 구성원을 누르고 있는 고민 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주목거리이며, 휘발성 높은 기사들도 취업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풍조 이다. 더욱이 취업의 근본 목적이 ‘부’의 축적이라는 것 이 주목된다. 뉴스 매체에서 소개하는 내용의 대부분 이 ‘부’를 어떻게 이루는 것에 관련된 기사라는 점에는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부의 축적은 비난할 대상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인류가 자유롭게 사는 것은 모 두 경제적 활동의 결과이며, 부를 이룬 결과의 하나이 기 때문이다. 다만 부를 이루는 수단이 목적으로 인해 무소불위(無所不爲)가 된 것이 문제일 것이다. 더욱 이 목적 달성을 위해 동기니 명분이니 하는 인격적 용 어는 더 이상 공허한 소리의 메아리로만 치부되는 세 상이다. 사람이 만드는 세상은 그렇게 끝없는 경쟁과 소리 없는 고통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고 이야기 된 다. 아이들은 석차에 매달리는 시험에, 대학생들은 취 업에, 어른들은 승진에만 몰두하는 무한경쟁의 사회에 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단순한 화두가 최근 회자되 는 것이 오히려 늦은 감이 들 정도이다. 그렇다고 단번 에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을 내놓기도 어려운 실 정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반문하고자 한다. 사람에서 해결책을 찾아야하지 않는가? 영국의 철학자인 존 스튜어 트 밀은 자기 계획을 자기가 선택하는 사람만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행동과 결과만이 아니라 인격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 하고 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자신이 책임지는 일이라면, 감히 그것은 인생에서 역경의 시기 일 뿐이며, 한번은 헤쳐 나가야 할 폭풍우에 지나지 않 는다고 외치고 싶다.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며 결정 이라면,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다가가는 한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모든 일이 누군가의 노력과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소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은 물론 우리사회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이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본다. 전근대 교육에서도 소통을 우선적으로 강조했 다. 교육은 학교구성원들이 서로 성장시켜 준다 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견인이 아닌 쌍 방의 소통과 교류를 말해주는 뜻이다. 감히 나 의 전공인 역사에서 혜안을 찾는다면, 결국은 각자의 위치에서 본연의 임무에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공 부를 하는 곳이다. 인생에서 공부만을 하는 시 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오늘날 길어진 수명에 비해 대학의 고등교육을 받는 시기만을 놓고 보 면 정말 쏜 살 같은 시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결국은 최선을 다하는 것 이 최고의 대처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자신이 담당하거나 해결해야하는 것을 완성하는 것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원만한 길이다. 누구에게나 벽은 언제나 높다. 사람은 저마다의 안목으로 자신의 인생을 사회에 맞추기에 모든 장애가 높은 벽으로 보일 뿐이다. 그 벽을 넘으 려고만 하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끝없는 욕망이 표출된 하나의 모습이라고 보인다. 반면 벽에는 어느 곳에나 문이 존재한다. 문을 열 수 있는 키는 누구나 지니고 있다. 다만 그 문이 어 디에 있는지 보지 못하거나, 아직도 자신의 키 를 만들지 못해 헤매는 시간이 많아서 갈등이 야기되는 것이다. 완연한 봄의 교정에서 누구나 자신의 키를 찾아 문을 여는 모습은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이왕무 교수

교양학부

TAG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