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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가져온 성장
  • 편집국
  • 등록 2017-05-08 12:13:39
  • 수정 2017-05-08 12: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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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잃지 마세요!

 

 저는 지금 대학에서 강 의를 하고 있고, 틈틈이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특강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복 지관 관장이기도 합니다. 오십이 조금 지난 나이에 석사학위를 받고, 조금 더 지나서 비록 전문대학이지만 전임교수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소통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현실에 영민하지 못했던 저의 지난날은 신산스러웠 습니다.

 

 현실은 힘겨웠고, 꿈은 저를 비웃기만 했습니다. 많 은 일을 전전하고 겪으면서, 시작의 갈래는 많았지만, 결실은 거의 거두지 못했던 실패와 불운이 지겹도록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행복합니다.

 

 강의실을 가면서 하루도 가슴 설레지 않은 적이 없습 니다. 아마도 늦음에서 오는 열정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힘든 어려움을 겪어오면서 잃지 않았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희망’이었습니다. 너무나 흔한 말이어서 웃 을 지도 모르지만, 저는 희망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읽은 책들

 

 제가 대학을 다니던 그 때는 암울했던 시대였습니다.

 

 단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에 입학을 했지만, 공부를 하는 것은 다음, 그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사회과학 저서를 제법 읽었습니다. 우리들의 열정으로 가득했었던 이의동 자취방에서 밤새워 읽었던 책으로 인해 전율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때 읽었던 책들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었고, 사고의 깊이를 더해 주었습니다.

 

 독서의 자양분은 켜켜이 내 의식 속에 쌓여, 지금 강 의실에서 꽃을 피워주기도 합니다.

 

 너무나 고전적인 말이어서 귀담아 들리지 않겠지만, 저는 언제나 책을 가까이 하여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느 교수님 그리고 성장하는 삶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던 제가 오십 초반의 나이 에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또 복지관장을 할 수 있는 데에는 한 분의 은사님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시국에 대한 열정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던 때, 젊은이로서의 고뇌도 이해하지만 좀 더 학업에도 진력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미 국에 계실 때에도, 서신을 보내주시면서 계속 학업을 격려하셨습니다. 한 번은 저를 연구실로 불러서, 자네는 후배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공부하기 어려우니 1년간 휴학해서 대학원 진 학 준비를 하라고 하셔서 저는 곧장 휴학을 하 고 충북 음성으로 갔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수님 기대를 이어가지 못하고, 오랜 세월 홀로 기다리시는 어머니가 계시는 부산으로 내려왔 었고, 고향에 와서도 저의 삶은 안온하지 못하 였습니다. 그러다 좀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 하고, 사회복지사 1급 시험도 합격을 하고... 그 러다 어언 30여년이 지나서야 교수님 뵐 면목을 찾게 되었습니다. 가슴 한 구석에 머물고 있었 던 교수님의 바람... 저는 강의를 할 때마다 가끔 교수님 생각을 하면서도 연락을 할 수가 없었습 니다. 미안한 마음 때문에.... 모교의 사회복지학 과에 재직하셨던 최경구교수님.

 

 제가 먼 길을 지나오면서도 사회복지의 꿈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도, 강단에 설 수 있었던 것 도 교수님 때문입니다. 제 마음속에 계시는 교수님으로 인해 더욱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겠습 니다. 고맙습니다.

 

강이근 교수

경상대학교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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