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책]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이수민 기자
  • 등록 2022-10-04 15:53:23
기사수정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해외여행'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어진 우리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책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 <지구에서 한아뿐>으로 잘 알려진 정세랑 작가의 여행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는 여느 여행가이드북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추억을 복기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미완성이라고 생각해 모아뒀던 여행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제는 한 권의 기록으로써 남겨도 손색없겠다 결심해 이 책을 작성하게 됐다고 한다. 줄곧 SF 장르물만을 고집해온 정세랑 작가이기에 이 책은 △뉴욕 △아헨 △오사카 △타이베이 △런던의 '현실 여행기' 같기도 한 편의 '공상 과학물' 같기도 한 아리송한 매력을 뿜어낸다.


 특히 정세랑 작가는 다섯 챕터에 걸친 여행 에피소드를 풀기 전, 각 도시에 방문하게 된 이유를 독자들에게 세세하게 읊조린다. 가령, 남자친구를 어떻게 만나게 됐고 왜 그의 독일 유학길에 함께 오르게 된 건지 같은 것 말이다. 때로는 이런 그녀의 솔직담백한 입담에 매료돼 마치 옛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정세랑 작가가 뉴욕 센트럴파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공원 한 가운데에 비에 젖은 토끼 인형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참 동안 그것을 설치예술작품인 줄 알고 관람했다고 한다. 그러나 곧 그것이 작품이 아닌 그저 누군가가 떨어뜨리고 간 사소한 물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토끼 인형 곁으로 다가가 사진 한 장을 찍는다. 비록 별거 아닌 일상이라도 조금만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빛나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정세랑 작가는 사람들이 길에 두고 가는 물건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어김없이 다정하고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버릇이 생겼다고 기록했다.

 

"항상 다니는 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 자신이 사는 곳을 매일 여행지처럼 경험하는 사람들이 결국 예술가가 되니까."

-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p.95 中

 

 일명 '코로나 시국'을 보내며 우리는 자연스레 대면보다 비대면이 더 편한 시대를 살아가게 됐다. 그런데도 정세랑 작가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를 강조한다. 세상을 향해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마음이 들 때, 벨기에의 와플과 아헨의 생강 쿠키 하나에 감탄하고 영국의 정원에서 한 노부부의 포옹 장면을 보고도 금세 마음이 벅차오르곤 하는 따스한 정세랑의 시선으로 지구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 분명 내가 서 있는 그곳이 어디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작고 소소한 하루가 근사한 휴양지에서 보내는 여름휴가 못지않게 반짝거리게 되리라.

 

이수민 기자 ㅣ leesoomin22@kyonggi.ac.kr


TAG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