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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메인] 현대인의 필수품, 라면
  • 서지수 기자
  • 등록 2022-03-14 16: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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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초의 ‘삼양라면’부터 K-라면 ‘불닭볶음면’까지
“꼬불꼬불 꼬불꼬불 맛좋은 라면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나” 노랫말처럼 라면은 우리 생활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됐다. 그렇다면 라면이 우리 밥상으로 오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본지에서는 라면과 한국 라면의 발전 과정에 대해 알아봤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식품



 라면은 국수를 증기로 익히고 기름에 튀겨서 말린 면에 가루수프를 넣어 끓여 먹는 즉석식품을 말한다. 세계라면협회(WINA)에 의하면 지난 2020년 기준 전 세계에서 연간 1천억 개의 라면이 소비된다고 한다. 라면은 조리가 간편하고 유통기한이 길어 많은 사람에게 한 끼 식사로 사랑받는다. 라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는 중국(홍콩 포함)으로 연간 463억 개의 라면을 먹는다고 한다. 이어 △인도네시아 126억 개 △인도 67억 개 △베트남 70억 개 △일본 59억 개 △미국 50억 개 △필리핀 44억 개를 소비하고, 한국이 41억 개로 8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인당 연간 소비량에서는 한국이 79.7개로 수십 년간 독보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4.5일에 한 번 라면을 섭취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고춧가루 양념과 쇠고기 육수 베이스의 매운 라면이 일반적이며 감자전분을 섞은 쫄깃한 식감의 면을 선호한다. 


한국 라면의 역사, 1963년 ‘삼양라면’ 출시


 라면은 중국의 납면(拉面, lamian)이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식 라멘이 됐고, 1958년 안도 모모후쿠가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것이 시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식량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에 안도는 닛신식품을 설립해 면발에 양념 국물을 섞는 아지즈케 방식의 ‘치킨라멘’을 판매했다. 1963년 삼양의 전중윤 회장은 일본의 라면을 받아들여 국내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당시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박정희 前 대통령은 삼양라면에 흥미를 보였고, 라면에 고춧가루를 투입할 자금을 지원함과 동시에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한 혼분식1) 장려 정책을 추진했다. 이로써 한국의 연간 라면 판매량은 1966년 240만 개에서 1969년 1,500만 개로 늘어났다. 이후, 일본식 인스턴트 라면과 달리 맵고 짠 한국식 라면이 붐을 일으켜 △롯데공업(농심) △오뚜기 △한국야쿠르트(팔도) 등 또한 라면 산업에 진출했다. 


K-라면의 발전, 시대별 라면 트렌드 


 삼양라면이 한 봉지에 ‘10원’으로 출시한 이후, 현재 삼양라면(5개입)의 가격이 대형마트 기준 2,480원에서 3,500원으로 오르기까지 라면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삼양라면 출시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25원임을 생각했을 때 라면 한 봉지의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삼양라면은 판매 20년 만에 한 봉지 가격이 100원을 넘어서는 등 물가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면서 라면은 서민의 굶주린 배를 채우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삼양라면과 롯데라면은 닭고기 육수 베이스의 라면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농심이 1970년 소고기라면과 롯데 소고기 짜장면을 출시하면서 쇠고기 육수 베이스의 라면이 자리 잡게 됐다. 1980년대에는 지금까지도 인기가 많은 △너구리 △육개장사발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팔도비빔면 △신라면 △도시락 △진라면 등이 출시되는 등 ‘라면의 황금기’였다. 1998년 국내 라면 시장의 규모가 1조 원을 돌파했고, 200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한국 라면이 해외에 진출하게 됐다. 2010년대에는 △신라면블랙이 프리미엄 라면 △꼬꼬면이 하얀국물 라면 △불닭볶음면이 챌린지 트렌드를 선도하면서 보다 다양한 컨셉의 라면들이 등 장해 소비자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했다. 앞으로도 한국 라면의 발전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서지수 기자 | seojisu0120@kgu.ac.kr


1) 주식으로 잡곡을 섞어 먹거나 밀가루 음식을 섞어 먹는 식사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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