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이달의 History] '그날'의 '서해'
  • 김서연 기자
  • 등록 2022-03-14 08:29:33
  • 수정 2022-03-15 09:16:57
기사수정
  • 기억 저편의 바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
서해수호 3개 사건과 55인의 호국영웅을 추모하기 위한 ‘서해수호의 날’.
폭풍의 항해 속 굳건히 자리를 지킨 그들을, 이젠 우리가 지켜야 할 때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그날의 서해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자랑스러운 바다의 영웅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봤다.

✔ 3월 25일, 서해수호의 날 


 잔잔히 울렁이는 서쪽의 파도. 보기만 해도 평화로워지는 그 푸른 바다엔 결코 잊어선 안 될 아픔이 있다. 우리는 그 상처를 ‘서해수호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추모한다.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 △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서해를 수호하다 순국한 호국영웅 55인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정부는 지난 2016년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했다. 해당 날짜로 기념일을 제정한 이유는 북한의 서해 도발 중 우리 군의 희생이 가장 많았던 ‘천안함 피격 사건’의 발생일을 기준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며 올해는 오는 25일(금)에 7번째 ‘서해수호의 날’이 돌아온다.


✔ 파도의 잔해 속 ‘그날’의 이야기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오전, 북한 경비정 두 척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했다. 이에 우리 군은 고속정 네 척을 통해 경고 방송을 진행했으나 북한의 갑작스러운 선제공격으로 남북한 함정 간 치열한 교전이 시작됐다. 교전은 25분 만에 끝이 났지만,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서후원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해군 제2함대사 소속 천안함이 불의의 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선실에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완전히 기울었고, 모든 교신이 두절됐다. 습격 6분 후 고속정 5척이 긴급 출항했고, △해군 고속정 △해양 경찰 △ 관공선 등 모든 작전 요소를 통해 구조를 진행했다. 그 결과 당시 본교에 재학 중이던 안동엽(환경에너지시스템공학·08학번) 상병을 비롯한 46명의 장병이 전사했고, 구조 수색작업 도중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 

 2010년 11월 23일, 북한은 같은 달에 진행된 국내 호국훈련을 구실삼아 연평도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170여 발의 포탄을 발포했다. 우리 군은 즉각 사격을 통해 대응했으나, 이 과정에서 해병대 서정우 병장과 문광욱 이병이 전사했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이는 6.25 전쟁 이후 북한이 우리 영토에 직접적인 포격을 가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 오늘날 잔잔한 항해의 출처 


 이러한 55인의 호국영웅을 기억하기 위해 국가보훈처는 매년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개최한다. △국민의례 △추모 공연 △기념사 등의 행사로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추모하고, 서해수호 55인을 상징하는 55송이 국화꽃 바구니를 헌화한다. 또한, 정부는 지난 2018년 7월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 특별법 시행령’을 의결해 제2연평해전 용사들을 전사자로서 제대로 예우하고 명예를 드높였다. 


“그날처럼,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

-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타이틀 中 - 


 굉음과 공포로 가득한 순간에도 그들은 끝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그들의 손끝은 결국 대한민국의 영해를 지켜냈고, 그들이 목숨 걸고 실천한 애국심은 조국을 넘어 국민 한 명 한 명의 자유와 평화가 됐다. 우리는 자신 앞에 펼쳐진 수많은 날을 포기하고, 조국의 미래를 선택한 그들의 ‘그날’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범함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오늘날 잔잔한 서해의 바다는 어떻게 지켜진 것인지 계속해서 되새기고 추모해야 한다. 오는 25일(금)에 있을 제7회 서해수호의 날엔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김서연 기자 Ι tjdus5620@kyonggi.ac.kr

TAG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