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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처음 바다로 나왔을 때
  • 한진희 수습기자
  • 등록 2021-11-09 09: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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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복을 입을 때만 해도 어른이 되는 것은 까마득한 일로 보였다. 중학생이 됐을 땐 이제 막 알림장 쓰는 것에서 벗어난 어린아이 같았고, 고등학생이 됐을 땐 변한 거 하나 없이 대학 입시 준비만 추 가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새 어영부영 성인이 된 지 1년하고도 반이 더 지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나이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기자는 물 흐르듯 나이만 변해서 성인이 됐다. 여전히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더 많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데 성인이 되자 교복을 입던 미성년자 때와는 달라지는 게 생겼다.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스스로를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기자를 먼저 챙겨주지 않는다. 나이를 먹고 환경이 변할수록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나를 담고 있는 세상만 점점 커지는 기분이다.


 기자는 언제나 알림장을 써서 부모님께 보여주던 그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더 이상 그 시절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작고 소중하던 공간은 어느새 한눈에 다 둘러보기 힘들 정도로 크고 웅장해져 있었다. 기자는 세상에 함께 어우르던 전과 달리 지금은 이 넓은 공간에 아주 작은 점일 뿐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어른들은 언제나 커다란 세상에서 반짝 반짝 빛을 내며 살아가지만, 그 모습을 보자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기자도 티브이 속 저 사람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휩쓸리듯 어른이 돼 남들이 사는대로 따라왔다. 그래서 그들처럼 우물 속 개구리를 벗어나 바다의 고래가 될 수 있을지 겁이 나기도 했다.


 ‘행복한 고구마’라는 짧은 만화가 있다. 인삼들 틈에서 평생 본인이 인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오던 행복한 고구마는 본인이 사실 고구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고구마는 고구마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SNS에서 스쳐지나가듯 본 이 짧은 만화에서 기자는 고민에 대한 답을 얻었다. 본인을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면 굳이 세상에 맞춰 무언가로 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래가 되지 못하면 어때? 크고 넓은 바다의 0.01%도 차지하지 못하는 개구리면, 뭐 어떤데?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결국 내가 나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기자는 이 모습 이대로 21년을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늘 같은 모습이라 어쩌면 더 커진 세상에서 존재감이 작아지고, 덜 빛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앞으로 지금보다 더 반짝거리고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여전히 지금 모습 그대로일지 역시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나’는 여전히 ‘나’일 것이라는 것.


한진희 수습기자Ιjinhee1267@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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