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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history] 공기와 같은 우리말, 그 발자취
  • 박선우 수습기자
  • 등록 2021-11-01 10: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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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날을 어떻게 보냈나요
올해부터 대체 휴일 제도가 한글날에도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지난 11일이 휴일이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
경일이라고 해서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 뿐 아니라 한글날의 취지인 한글 사랑 의식을 가지는 경우도 보기
어렵다. 이에 본지에서는 한글의 역사와 지금의 한글이 있기까지 노력한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훈민정음,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조선 당시, 글은 특정 계층 사람들 만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를테면 농서와 같이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서적을 편찬함에 있어서 그들이 읽지 못하는 한자는 쓸모가 떨어졌다. 실제로 세종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이끌기 위해 그림을 내용으로 하고 한자를 주석으로 달거나, 이두로 번역하는 등 많은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고, 새로운 글자의 필요성은 높아져만 갔다.


현재 한글은 거의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세종 혼자 또는 소수의 직계 가족의 도움만을 받고 단독 창제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방대한 작업임에도 참여 기록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당시 기득권층의 심한 반발을 고려했을 때 매우 은밀하게 진행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훈민정음은 의외로 양반 층 및 중인층에서 많이 쓰였는데, 특히 행정 실무에서 유용성을 증명하며 조선의 통치 체계 강화에 일조했다. 이러한 점을 미뤄 봤을 때 당시 훈민정음 반포 사유도 지배층의 편의성에 뒀다면 설득력도 있고 반대에 부딪힐 일도 줄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 서문에는 창제 이유를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펼칠 수 없는 백성들을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는데, 결국 훈민정음을 창제한 가장 주요한 까닭은 글을 쓰게 될 백성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주시경 선생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 △국어학자 △언어 민족주의자다. 사실 ‘한글’이라는 말부터 주시경이 지은 것으로, 한글날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종대왕만을 떠올리지만 실질 적인 현대 한글의 아버지는 주시경이라고 할 수 있다. 주시경은 한문 원문을 음독하고 나중에 우리 말 토를 달아 뜻풀이를 하는 방식의 한문 강독법에 의문을 가졌다. 이에 그는 우리말과 한문이 다름을 인식하고 국어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주시경은 △독립신문의 교정 △독립협회 참여 △수많은 학교의 국어 교사 등을 통해 국어학의 기틀을 다지는데 바쁘게 뛰었다.


뛰어난 학구열에서 비롯한 빽빽한 수업 일정을 소화했던 주 시경의 제자들 또한 한국어 연구와 근대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국가보훈처는 그 중 △장지영 △김윤경 △권덕규 선생을 ‘2021 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들은 일제의 탄압에도 우 리말 사전을 편찬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다. 나라와 나랏말을 빼앗긴 경험 때문인지 최현배 박사가 국어학 자로서 가지는 사명감은 남달랐다. 현재 우리말의 가로쓰기는 그 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장 처음 가로쓰기를 주장한 것은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지만, 조선어학회에서 우리말을 지키는 데 힘쓰다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한 그는 해방 후 이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주장했다.


한글을 사용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


우리가 한글, 또는 한글을 지키고자 노력한 사람들에 대해 얼 마나 알고 있을까? 한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사 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만으로 우리도 미래의 한글을 지켜나 가는 애국자가 될 수 있다. 독자들이 이번 기사를 통해 우리말 과 민중을 사랑했던 그들에 대해, 오랜 연구와 사활을 걸고 지켜 냈기에 지금 존재할 수 있는 한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앞으로의 일상, 또 다가올 내년의 한글날에는 우리말을 지켜낸 사람들의 발자취를 떠올려보자.


박선우 수습기자Ι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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