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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history] 제국주의의 끔찍한 부산물, 아프리카 땅따먹기
  • 한진희 수습기자
  • 등록 2021-10-06 11: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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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구 열강이 남긴 잔인한 후유증
지난 7월 28일 개봉한 영화 모가디슈는 소말리아 내전 발발 당시의 상황을 주제로 삼고있다. 부족 간의 갈등으로 인해 일어난 소말리아 내전은 여전히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있다. 그러나 소말리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곳곳에서 부족끼리 나뉘어 갈등이 일어나고 전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알아봤다.



아프리카를 향한 제국주의의 총칼


세계지도를 펼쳐 아프리카 대륙을 보면 자로 대고 그린 듯 나눠진 국경선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이 이렇게 나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국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제국주의란 강력한 군사력으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다른 민족이나 국가를 지배하려는 정책을 말한다. 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타 국가들을 침략한 서양권 국가 및 일본 등지에서 나타난 패권주의 정책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대표적인 제국주의의 피해자이다. 아프리카는 오늘날처럼 국경이 나뉘기 이전인 1830년대부터 서구 열강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1870년대에 이르러 서구 열강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지배의 강도가 점차 심화됐다. 이로 인해 당시 아프리카는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가거나, 자국의 자원을 강제로 빼앗기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아프리카를 나눈 베를린 회의


아프리카의 국경이 멋대로 갈라진 것 역시 식민지배로 인해 받은 피해 중 하나이다. 1880년대에 들어서면서 콩고분지 영유권을 두고 △벨기에 △프랑스 △포르투갈의 분쟁으로 서구 열강 아프리카 쟁탈전이 더욱 과열됐다. 이로 인해 개최된 베를린 회의는 서구 열강이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분할 원칙을 설정한 회의이다. 1884년 11월 15일부터 열린 베를린 회의의 결과, 콩고 분지 중심의 아프리카 분할 문제를 두고 ‘콩고분지조약’이 체결 된다. 콩고분지 조약의 체결로 서구 열강들은 아프리카 분할 원칙을 공식화했고, 국가 간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위도와 경도를 중심으로 국경선을 만들어냈다. 이후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독립운동이 일어나기는 했으나 큰 수확은 없었다.


독립 이후 찾아온 혼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아프리카도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는데, 이때부터 서구 열강이 마음대로 정한 국경선으로 인해 분쟁이 일어났다. 국경선을 다시 정하자는 카사블랑카 그룹과 국경선을 유지하자는 몬로비아 그룹으로 갈렸기 때문이다. 긴 논쟁 끝에 아프리카 통일 기구는 국경선을 유 지하는 입장 쪽으로 합의했다. 새 국경선을 정할 경우 예상되는 혼란과 분쟁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산물인 칼 같은 국경선은 이미 여러 피해를 남겼다. 본래 아프리카는 여러 부족이 모여 살던 대륙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국경선을 만들자 강제로 묶이게 된 부족들 간에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르완다 대학살, 소말리아 내전 등이 대표적인 분쟁 사례이다. 이 밖에도 콩고에서 수많은 분리 독립시도가 일어나는 등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분리 독립운동의 혼란에 휩싸였다.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아프리카는 여러 대륙 중 최빈국이 가장 많은 대륙이다. 전통적 단위경제권이 회복되지 못해 가난에 허덕이고, 아직도 곳곳에서 내전과 분리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식민지배에 대한 서양의 보상이나 사과는 미흡하다. 대다수 지배 국가들은 식민지배의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아프리카 대륙의 불법 점령을 부인하고 있다. 여론에 떠밀려 60년이 지나서야 사과하는 벨기에, 여전히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는 프랑스와 독일 등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아프리카는 아직까지도 식민지배의 후유증을 앓고 있고 언제 그 고통에서 해방될지 알 수 없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상처를 외면하고 회피한다면, 피해자의 상처가 어떻게 아물 수 있을까.


한진희 수습기자Ιjinhee1267.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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