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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과 심안의 학문
  • 편집국
  • 등록 2021-03-29 09: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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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의 성패는 간결하면서도 근본적인 것을 찾아 논하는 것에 첩경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학문을 할 수 있는 비결이다. 간혹 학문은 멀리 있고, 아득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에 동의할 수 없다. 그저 우리가 사는 나날의 삶이 학문적인 것의 대상이 된다. 있는 것을 찾지 않고, 있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루하루 매일매일, 그리고 온종일 학문을 위하여 마음을 열어두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근간이 되는지 성찰하고 힘써 탐구해야 한다.

  <<</span>대학장구>> 7장에 있는 말을 음미해보자. 그 말에 유교적인 학문의 정수와 요체가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밥알을 곱씹듯이 선비들이 항상 거론하는 것인데, 이것이 단순하지 않다. 학문하는 마음을 간결하게 정리해 놓아 거듭 읽어도 그 뜻이 항용 우리의 심금을 근저에서부터 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 인용하여 번역하고 뜻을 새길 필요가 있다.

  뜻은 간단하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는 말이다. 이는 무엇을 뜻함인가? 조선시대 학자들은 이를 삼불’(三不)이라고 말하면서 인용하고 주석하며, 다른 이의 견해와 더불어서 수작하였다. 그러나 말을 번역하였다고 해서 뜻이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왜 이 말을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표면의 의미를 벗어난 내적인 깊은 성찰을 더 해야만 한다.

  우리가 감각 기관에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감각기관에 의한 육안과 감각을 넘어 마음에 의한 심안을 언급하면서 육안이 아닌 심안으로 보는 것을 중시하였다. ‘보다’, ‘듣다’, ‘먹다라는 동사는 마음이 개입하여 자동사화 되지 않으면 알아보다, 들어보다, 맛보다와 같은 형태가 되지 못한다. ():(), ():(), ():지기미(知其味) 등의 구분이 이렇게 하여 준별된다. 가슴과 함께 마음 속 깊이로 보는 것을 가장 중시한 셈이다.

  영어 표현에서도 동일한 면모가 발견된다. 가령 ‘look without see’라고 하는 말이 그것이다. 직역하면 이해하는 것 없이 본다는 뜻이다. 불어에서도 동일한 표현을 찾을 수 있으니 ‘regard sans voir’라고 하는 것도 같은 뜻이 된다. 모두 마음을 담아야 진정한 이해를 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마음을 잡고, 마음을 바루고, 마음을 담아야만 현상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진지한 이해가 가능함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마음으로 찾아서 보고, 듣고, 읽고, 맛보아야만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신뢰하고 말을 깊이 있게 덧보태며 이해하는 것이 학문이나 믿음의 본질이 된다. 학문의 진정한 모습을 강조하는데 동서양이 따로 없고, 종교와 학문의 분별이 달리 있지 않다. <<</span>성서>>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등장한다. <</span>신약성서> 사도행전 2826절에 있는 말은 그러한 표현의 일치점을 적절하게 예거할 수 있는 본보기이다.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라는 말이 범례이다. 성령으로 듣고, 성령으로 보아야만 진정한 이해를 할 수 있음을 강조하여 말한 셈이다.

  참다운 공부, 진리를 찾아가는 길은 여기에서 멀지 않다. 많은 길이 있으나 육안으로 찾지 말고, 더욱 큰 심안을 열어서 눈앞의 길을 넘어서는 또 다른 길을 찾아 조망해야만 한다. 그리스어 μετα-(meta)δός(hodos)는 교묘한 뜻을 자아낸다. 메타는 초()이며, 호도스는 도()이다. 이 둘이 결합하여 이른 바 길 넘어의 길이라고 하는 뜻이 구색되고, 이것이 영어의 method라는 방법이나 이치가 되었다. 우리의 학문은 길을 넘어서는 길을 찾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못하고 자신의 말에만 빠져서는 인류의 근원적인 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말을 넘어서는 말, 글을 넘어서는 글, 경험적인 것으로 굳어진 현상을 넘어서서 본질적인 탐구를 하는 것이 곧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이다. 남과 타협하고 대화하려면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학문에 있어 섣부른 생각, 이치를 따지지 않는 생각을 남발하게 되면 문제의 핵심을 놓칠 우려가 있으며, 동시에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남의 말을 포함하여 나의 말을 포괄하는 드넓은 견해는 바로 마음에서 우러난다. 여러 가지 길을 초월하여 큰 이치를 구사하는 마음이 필요한 때이다. 현재 우리를 옥죄고 있는 학문의 빈곤은 대부분 남의 말을 가져다가 전달하는데 있다. 자신의 진정한 깨달음을 통하여 터득한 심안의 학문은 별도로 추구하지 않아서 학문의 위기가 초래되고 있다. 심안의 학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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