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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로의 여정
  • 편집국
  • 등록 2020-12-08 11: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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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화에서 이미지는 하나의 조형적 언어의 형태를 가진다. 여기에서의 언어는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소통의 역할을 의미하거나 수행하지만은 않는다. 우리의 삶속에 익숙하게 보아오던 어떤 대상이나 자연을 단순히 회화(그림)에서 찾으려고 하거나 동일시하려는 일반적인 시각과의 차별성을 지닌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과 친밀함의 관점에서만 회화를 바라본다면 그저 망막에 비친 시각적 유희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색다르고 낯선 형태들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낸다면 보다 흥미롭게 회화작품을 통해 예술적 감동을 전달 받을 수 있으며 보다 넓은 사유의 폭과 감성의 깊이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은 대부분 추상적 미술을 지향한다. 과거 유럽의 전통적 사실주의 회화와의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예술을 위한 예술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사고와 창의력으로 새로운 회화의 지평을 열어나갔다. 20세기 현대미술은 그래서 더욱 난해하며 추상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재료사용에서도 유화(15세기 얀 반 아이크 형제 발명)를 중심으로 각종 아크릴류의 합성물감과 오브제 사용등 전통적 재료와 더불어 과학의 영향으로 재료의 다양성이 한목 거들게 되었다. 추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구상적 셩격을 지니는 추상(반추상)이고 두번째는 비대상 회화이다. 전자는 동사 to abstract(~추출해내는)의 뜻으로 피카소의 큐비즘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 될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 명사 abstraction은 이미(~추출된 것)으로 파악되어 말레비치의 기하학적 사각형태처럼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비대상으로 이해 할 수 있겠다.

 

다음은 주요현대미술사조의 흐름가운데 추상성을 찾아보자

인상주의(impressionism)-빛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순도 높은 색채의 물감사용으로 실제보다 더 선명하고 투명한 느낌으로 표현되어 주관적 시각의 극대화로 이어지며 미완의 단편적 이미지로서 추상성이 내재되었다- 화가로는 마네, 모네, 드가, 시슬레, 르느와르

입체주의(Cubism)-대상을 조형적으로 접근하고 일점 원근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점에서 묘사하고 색채의 모노크롬(단색화)을 통하여 현실대상에서 멀어져 보이는 추상성을 가진다.-화가로는 피카소, 브라크, 후안 그리, 쟝 메징거

표현주의(expressionism)-무엇보다 인간의 감정의 직접적인 표출을 위하여 선이나 색채표현의 단순화와 강렬함 그리고 즉흥적인 붓의 스트로크의 방법으로 대상의 이미지가 나타나면서 추상적 분위기가 스며들어있다.-화가로는 주로 독일과 북부유럽이 해당된다. 키르히너, 로트루프, 헥켈, 뭉크, 칸딘스키, 그 밖에 무의식, 자동기술법의 초현실주의 그리고 전후 추상표현주의, 미니멀아트등이 있다. 과거에 비해 20세기에 들어오면 짧은 기간에 이처럼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회화가 나타날 수 있을까하는 놀라움을 지울 수 없다. 특히나 추상(반추상), 비대상 회화의 스펙트럼은 넓고 지속적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추상미술은 정형화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여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조형적 언어는 어쩌면 예술에서만 통용되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예술계에서 예술가들만의 소통의 창구 일수도 있으며 그림의 내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진 않는다. 형태에 대해 색채에 대해 그리고 구도와 마티에르(질감)에 관하여 말한다. 이미지를 인식할 수 있는 구상계열 작품만큼이나 모호하고 흐릿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추상회화도 열린 마음의 눈으로 접근해본다면 보다 편하고 익숙하게 감상할 날이 올 것이다.

 

추상회화의 선구자 칸딘스키(Kandinsky)의 경험담으로 추상으로의 여정을 마친다.

 

나는 많은 스케치를 했다. 식탁이나 여러 장식물, 결코 가치 없는 것이 아닌, 너무도 강하게 그려진 것으로 그 가운데 용해되어 졌다. 잠시 화실에서 나와 석양 무렵 산책 후 작업실에 가까울수록 열린 문 사이로 예기치 않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형과 색채로만 된 그무엇에...화실에 도달했을 때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것은 바로 벽에 거꾸로 세워둔 나의 그림이였다. 다음날 대낮에 같은 효과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 하였다. 그림을 옆으로 해서 보아도 대상물이 따라다녔다. 석양의 아름다운 마무리도 거기엔 없었다. 나에겐 지금 대상물이 나의 그림을 방해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김기창 (서양화.미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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