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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우월주의의 몰락과 동양적 가치의 재발견
  • 편집국
  • 등록 2020-11-23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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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은 서구와 미국을 합친 말로 대략 2세기에 걸쳐서 세계 질서를 주도해왔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성과를 등에 업고 세계 식민지배 주의를 양성하였던 것에서부터 대서양 중심 문화가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소연방의 해체와 냉전 종식을 가져왔다. 또한 미국이 세계의 입법자와 경찰을 자처하며 글로벌 리더 노릇을 하게 되자 만 천하를 주도하게 되었고, 이러한 형세로 그들은 2세기 이상의 호황을 누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9년 이래 코로나 팬데믹으로 서양은 형편없는 처지로 몰락하고 있다.

팬데믹 사태 이후 미국은 보이지 않는 적인 바이러스에 맹폭당하고 있으며, 스스로 선진국임을 자처하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숱한 죽음을 초래했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에서 발호하는 질병의 추세를 보면, 과연 위대한 문명의 축복을 받은 나라가 맞기는 한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토록 하나임을 내세우던 유럽연합이었지만 속수무책인 재앙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문을 걸어 잠그고 지원을 하지 않는 등 참담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에 반하여 동양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의 대처는 기민하고 적절했다. 사태의 긴박함을 빠르게 인식하고 체계적인 수순으로 바이러스에 대응함으로써 코로나 팬데믹에 적절한 방역조치를 하였다. 개인의 가치보다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면서 집단의 대응이 우선하고 있는 점이 남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적 가치, 아시아적 미덕 등을 생각한다면, 이에 쉽사리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오랜 기간 소외되었던 동양의 윤리관과 철학적 사고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찍이 외국의 여러 학자들이 이에 대하여 지적한 바 있으나, 우리 스스로 그에 대한 자가진단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아시아의 문화적 가치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윤리와 규율을 내세워서 사회의 결속과 연대를 강화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극히 일부의 사실에 불과할 따름이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전체주의적 통제나 강제가 아니다. 소중한 것은 이익을 양보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나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을 추구하는 깊은 성찰과 배려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정한 일이 벌어지고 시위가 격화되면 물건을 약탈하고, 사재기를 일삼는 일이 자행되는 나라들을 떠올려 보자. 일례로,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마스크 쓰기에도 동참하지 않겠다고 난리를 치는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있다. 반면에 익숙한 대처와 자발적 희생에 주저함이 없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무엇이 쟁점인지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개인의 가치와 이익의 추구가 모든 것은 아니다. 어느 시에서 내건 말이 인상적인 지적이다. ‘모두 힘들지만, 모두의 힘이 필요한 시기임을 절감하고 양보와 희생, 배려와 소통을 중시하는 것이 사회와 나라를 살리는 길임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향후 전망을 새롭게 해 볼 일이다. 앞으로 세계 질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에 대해 전망 없이 사는 것은 과거에 안주하는 일이다. 현재를 딛고 보다 나은 것을 개척하는 일이 긴요하다. 자만은 금물이다. ‘K-방역등을 내세우면서 향후 전망을 독식하려는 사고는 경계해야만 한다. 참으로 필요한 것은 세계 질서의 재편과 종래의 질서를 복원하려는 힘에 어떻게 맞서고, 이 질서 속에 휘둘리지 않는 길이 무엇인지 거듭 고민하는 자세이다.

서양 우월주의의 몰락이 동양적 가치의 패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무엇에 강하고 무엇에 약한 것이 우연의 술수는 아니다. 서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함께 보장하면서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슬기가 요구된다. 전체주의적 통제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자발적 참여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강제에 대한 반발은 거세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허균이 <</span>호민론>(豪民論)에서 선언적으로 말한 바 있다. 천하에 두려워 할 바는 백성이라고 하였다. 백성을 셋으로 구분하였으니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이 그것이다. ‘윗사람에 부림을 당해도 묵묵히 있는 사람은 항민이고, 한없는 요구에 시름하고 탄식하며 윗사람을 탓하는 이들은 원민이고, 자취를 감추고 딴 마음을 품고서 천지간을 흘겨보다가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려는 사람을 호민이니 호민을 두려워하라고언명한 바 있다. 위정자는 슬기롭게 백성의 처지를 세밀하게 살피고 세계 국제 질서를 보다 넓게 보살피라는 의미를 거듭 이에 되새겨야 마땅하다. 백성을 두려워하고 이들을 하늘로 섬겨 백성을 살려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한 동아시아적 가치이다. 백성은 하늘이고, 하늘 아래 밥보다 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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