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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어떤 학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 백민정
  • 등록 2020-08-31 1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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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존감을 파괴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가스등 이펙트
어떤 학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당신이 하고 있는 사랑이 어쩌면 폭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본지에서는 친밀감을 빌미로 행해지는 정서적 학대, 가스라이팅에 대해 다뤄봤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상황이나 피해자의 심리를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만들어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가스라이팅이 지속될수록 피해자는 점차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되는데, 이때 가해자인 가스라이터가 피해자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피해자의 정신적 황폐화가 진행되면 가스라이터의 영향력은 증폭된다. 이 용어는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영화에서 유래됐다. 영화에서 남편 그레고리는 보석을 훔치기 위해 아내 폴라에게 교묘한 정서적 학대를 가한다. 그레고리의 지속적인 질타로 인해 폴라는 점점 자신의 인지능력을 의심하고 판단력이 흐려져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가스라이팅이 위험한 이유는 정신을 서서히 갉아먹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터는 상황 조작을 통해 상대방의 자아를 흔들어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고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해 가스라이터에게 의존하게 된다. 즉, 피해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감정적 학대인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학교 △직장 △연인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서 친밀감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가스라이팅 방법은 △ 거부 △반박 △전환 △경시 △망각으로 나눌 수 있다. 다음 그림의 대화를 살펴보자.

 

 

 

 

 

 

 

 

 작가이자 심리분석학자인 로빈 스턴 박사는 가스라이팅 피해의 징후로 △사과 △결정불가 △변화 △혼란 △폐쇄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만들어낸 문제 상황에서 모든 책임과 잘못이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못이 없음에도 가해자에게 사과를 하게 되고 본인의 선택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든 결정권을 가해자에게 넘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에 대한 의존도가 증폭된다.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기 때문에 인지하기 어려우나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했을 때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느끼고 자존 감이 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속적인 질타로 인해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 것 또한 가스라이팅 피해자의 징후다. 마지막으로,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실수에 대한 공포가 생겨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리게 된다. 그럴수록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의존하고 종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의존적 인격성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율성과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개인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스스로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조언을 해줘도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기도 한다. 과연 피해자가 멍청하기 때문일까. 인간의 심리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교묘한 심리적 자극은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 만약 위의 그림 속 대화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면 당신도 가스라이 팅 피해자일 수도 있다. 혹은, 당신이 누군가의 뒤에서 가스등을 조작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그림 백민정 기자│1009bmj@k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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