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우리나라는 과연 수학 강국인가?
  • 편집국
  • 등록 2020-08-31 09:27:44
기사수정


  

      

 필자는 몇 년 전 국제학술대회에서 미국의 한 수학자로부터 우리나라의 수학자들은 유능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수학자의 이름이 붙은 수학 관련 정리(theorem)나 공식은 본 적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가 수학을 공부하다보면 대부분 고대 그리스 철학자나 서양의 수학자들 이야기만 나온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수학 같은 건 아예 없었던 건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 나라든 문화가 형성되고 발전을 이룰수록 수학도 발전하게 마련이다. 논밭의 크기를 계산하고, 집을 짓고, 성을 쌓고, 바다를 간척하고, 강의 제방을 정리하고······. 이러한 모든 것들에 수학적 측량과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82년 신라 시대부터 수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 신라 시대 이전부터 이미 수학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당시의 수학은 천문이나 건축과 관련된 실용적인 수준에서 발달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훌륭하고 우수한 수학자들이 있었으며, 또한 서양과는 다른 독자적인 산술 방식이 존재했었다. 다만, 우리나라의 현대수학 고등교육기관은 일제 강점기 이전에 설립된 연희전문학교 수물과가 유일하였으며 해방 후 일본을 통하여 현대수학이 유입되었다. 이 후 1970-80년대에 다수의 학자들이 해외에서 수학을 배우고 돌아와 본격적인 현대 수학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한 국가의 수학 등급은 그 국가의 수학 및 여러 가지 분야의 수준을 고려하여 5개의 등급으로 분류한다. 1990년대 우리나라는 하위권인 그룹 II에 분류되어 있었다. 1993년 국가 등급을 그룹 III으로 올려 달라고 국제수학회에 신청하였으나 고배를 마신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던 중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2006, 대한수학회가 조사를 해 보니 우리나라 수학자의 논문 수가 무려 세계 12위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에도 들 만한 수준이었다. 국가 등급 2단계를 한 번에 올려 보자는 도전이 수학계에서 일기 시작했다. 당시 담당교수는 한 기고문에서 고심 끝에 2단계 승급 신청서를 냈는데 뜻밖에 여러 나라들이 크게 호응해 거뜬히 그룹 로 올랐다고 회고했다. 국가 등급이 한번에 2단계나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수학 후발국에선 꿈꾸기 어렵다던 수학분야의 올림픽 즉, 국제수학자대회 (ICM; 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유치도 현실로 영글기 시작했다. 드디어 2014년 국제수학자대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필자도 참가하여 학술발표를 했다.

흔히 수학포기자를 자처하는 학생이 갈수록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근간은 수학이다. 얼마 전 대한수학회 주최로 4차 산업혁명에서 수학의 역할에 대한 포럼이 열렸다. 한 발표자는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 Turing)으로부터 시작한 컴퓨터와 인공지능 개념이 4차 산업혁명의 뿌리라고 말했다. 앨런 튜링은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으로 대중에 친숙한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이다. 그렇다면 개인은 몰라도 국가는 수학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과연 수학 강국인가? 수학은 천재의 소유물인가, 아니면 미래 사회의 시민이 갖춰야 할 교양인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국제수학경시대회인 IMO(International Mathematical Olympiad)의 최근 전적을 보면 한국은 분명 수학 선진국이다. 2012년 사상 첫 종합 1위에 오른 뒤 5년 만인 2017년 대회에서도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처음 참가한 1988년의 22위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사이 러시아, 루마니아,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는 수학 패권을 잃었다. 미국과 중국은 수학 강국 위상이 여전하다. 최근 우리나라 수학과 교수들 중 올림피아드 출신이 많아졌다. 이들이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교육 효과가 더욱 높아졌다. IMO는 문제은행 없이 매년 전에 없었던 문제들을 창출한다. 따라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수학 문제의 수준에 국가 경쟁력이 결정되는데, 우리나라는 그 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1~3년 내에 IMO에 출전했던 학생들이 대학생이 된 다음 후배들을 지도하며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학 천재들은 보통 수학 전공을 선호하는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전자공학과 등 공대로 많이 진학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IMO에 참가한 학생 대부분이 수학과 진학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수학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미래 사회에는 메인 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류는 기존 방법론으로 불가능한 것들에 도전해야 한다. 이때 수학으로 익힌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수학이 수학을 넘어 여러 영역으로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학하는 사람들이 과학과 산업 등 여러 분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수학 관련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세계적 수준이라고 할 만한 국내 과학자들은 대부분 실험과학자다. 반면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 세계적 수준의 이론 과학자는 드물었다. 이제는 수학을 비롯한 일반 과학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학자를 배출할 다양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고 ICM에서 기조강연을 할 정도로 세계적인 수학자를 배출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정부의 지원은 어떠한가? 지난 정부는 산업수학을 육성하겠다며 몇몇 대학이나 교수에게 연구비를 나눠줬다. 기존의 수학자들에게 약간의 연구 인센티브를 주고 산업수학도 한번 해봐라는 식이었다. 이래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산업수학은 산업체로부터 다양하고 복잡한 요구가 있는 분야다. 기존 수학자들이 가욋일로 덧붙여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업수학에 매진하는 별도의 연구소를 세우거나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연간 예산은 너무 적다. 다른 국가 출연 연구소와 동일한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학 분야에 대한 교육과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학을 배우지 않는 나라는 없으니까.’ 이것이 간단한 답이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많은 이가 교육의 목표를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시를 배우는 것은 그것이 돈 버는 데 유용해서가 아니다. 삶의 가치, 인간으로서의 감수성 등을 기르기 위해서다. 수학은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준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수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데 더 유리할 것이다.

      

                                                  

                                                                            조동현(수학과)  교수님

 

 

 

TAG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