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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뭐야, 이거 결정적인 증거 아니었어?
  • 전은지
  • 등록 2020-04-27 09: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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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을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맥거핀
영화나 소설을 보다 보면 아주 중요해 보이는 장치가 나오곤 한다. 독자는 이런 장치가 작품 속 주요 사건의 실마리 나 결말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는 장치일 때가 있다. 소설 김종욱 찾기의 ‘김종욱’과 영화 검은 사제들의 ‘장미십자회’를 예로 들 수 있다.


위의 사례처럼 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와 전혀 상관없이 관객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극적 장치 혹은 속임수를 ‘맥거핀 효과’라고 칭한다. 맥거핀이라는 단어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서 사용한 암호로 스코틀랜드인의 이름에서 차용했다. 1960년 미국에서 개봉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Psycho)에서는 영화 극 초반에 여주인공이 돈을 훔쳐 모텔로 달아나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은 여주인공이 훔친 돈다발이 사건의 주요 단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그저 여주인공을 영화의 주요 배경인 모텔로 인도하는 미끼로 이용될 뿐이다. 즉, 영화의 주요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돈다발’은 그저 사건 전개의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맥거핀은 영화 내 사건에 대해 바람을 잡으면서 관객을 긴장시키고 영화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동시에 핵심 줄거리에 대한 관객의 주의를 흩뜨리기에 반전의 충격을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는 영화 외에 다양한 매체에서도 맥거핀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맥거핀 효과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할 경우 홍보 포스터와 영화 내용이 전혀 다를 때가 있다. 이때 주제에 맞지 않는 내용이 나오게 되면 그 내용을 기대했던 관객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맥거핀을 그저 관객들을 속이기 위한 미끼, 속임수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맥거핀 효과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 ‘대탈출’에서도 맥거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본 프로그램 내에서 △제작자가 잊거나 넘겨버린 설정 △미회수 떡밥 △사건을 방해하기 위해 시선을 끄는 속임수들은 맥거핀이 아닌 ‘red herring’ 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저서 ‘히치콕과의 대화’의 사례를 보면 조금 더 쉽게 맥거핀 효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두 남자가 스코틀랜드로 기차를 타고 가는데 한 사람이 “선반 위에 있는 저 꾸러미는 뭡니까?”라고 물었다. 다른 한 사람이 “아 저거요. 맥거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맥거핀이라뇨?”라고 의아하게 묻는 사내에게 다른 사내는 “그건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사자를 잡는 장치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편 남자는 “이상한 일이군요. 스코틀랜드 고지대에는 사자가 없는데요?”라고 대꾸했다. “아, 그래요. 그럼 맥거핀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군요.”

이처럼 극의 전말이 확실해졌을 때 맥거핀 효과는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그리고 관객은 스스로의 믿음과 판단이 무너지며 성찰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해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가치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무지와 오해로 인한 아이러니한 세계도 형성된다. 오늘날, 영화에는 맥거핀 효과 외에도 수많은 장치와 기법들이 사용돼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작품에 사용된 기법들을 의식해서 관람하다 보면 감독의 의도를 더욱 면밀하게 파악해 영화를 보다 심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전은지 기자│juneoej@kgu.ac.kr
그림  김은종 기자│kej8328@k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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