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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단상(斷想)
  • 편집국
  • 등록 2020-04-13 09:31:44
  • 수정 2020-04-13 09: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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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춥고 긴 겨울 끝에 맞이하는 춘삼월은 너나 할 것 없이 반가운 손님이지만, 특히 대학 캠퍼스에서의 그 의미는 더 크다. 대개 대학의 캠퍼스가 사계절을 뚜렷이 느낄 입지에다 조경을 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봄을 꼭 닮은 신입생이 있어 한 학기뿐 아니라 한 학년도가 시작됨을 화려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 자신 대학을 다니고 대학에 몸담은 이래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이 일이 올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봄은 왔건만 신입생은 물론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다. 꽃은 피고 이를 시샘하는 추위도 오가건만 텅 빈 캠퍼스는 내 마음 속 시간의 순차적 흐름을 흐트러 놓는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가까운 나라에서 벌어진 먼 일 정도로 치부했었다. 신종 바이러스라고는 하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로, 적어도 몇 달 후 찾아올 개학과 1학기 수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으로 흘려 듣고 보았었다. 하지만 이 정체 모를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아주 제대로 흔들어 놓고 있다. 그것이 어떤 모양새인지는 일일이 나열할 필요 없으리라. 대학신문이니 대학 이야기만 하자면, 신입생은 있되 보이지 않고, 수업은 있되 사람은 없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이질적인 상황이 어쩌면 이번 학기 내내 지속될 수도 있다니,  아무도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속 시원히 이야기 해 주지 못한다니 출구는 까마득하기만 하다.

안 볼 수도 없어 그 앞에 가게 되는 우울한 기사들 중에 단연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었다. 코로나의 역설이란다. 읽어 보니, 답답함에 집 근처 공원으로 잠시 산책 갈 때 자주 파란색이나 초록색으로 공기 질이 양호하게 나온 이유가 설명된다. 어디 우리나라뿐이랴. 인도에서는 독가스로 악명 높던 스모그가 걷히고 기적처럼 파란 하늘이 나타나고, 또 유럽 유명 관광지에서는 수질 오염이 개선되어 물고기가 돌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집에 갇히느라 비워 놓은 거리를 동물들이 차지한 광경은 또 어떠한가!

난 문학 전공자이니 문학 이야기로 잠시 알은체를 하자면, 과학의 발달에 대해 작가들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서양문학에서는, 근대와 더불어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한 과학 기술에 대해 의심하고 경계하는 작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가령 막스 프리쉬의 호모 파버는 기술자 호모 파버가 이름 그대로 기술과 도구를 맹신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도 알아보지 못하고 끔찍한 죄를 저지르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꾀와 지성을 믿고 왕이 되지만 정작 자기 부모도 알아보지 못한 오이디푸스 왕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기술맹신주의가 갖는 위험성과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경고한다. 고대인들은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로 신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맹세하고 인간의 겸손함을 배웠겠지만 그 후예인 호모 파버는 다른 길을 선택한 듯하다. 계산적 이성과 도구로 무장한 호모 파버들은 자연과 자신을 분리시키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 , 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분석을 따라가자면 바이러스의 출현도 인간의 자연 정복과 무관하지 않다. 책에 의하면 바이러스는 농경과 도시의 발생과 더불어 생겨나 가축과 동물들을 통해 인간에게로 옮겨졌다. 그렇게 보면 바이러스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자연을 마구잡이로 재단하는 인간들을 향한 자연의 반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신기술로 재무장한 호모 파버의 후예들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때마다 이마저 정복하는 역사를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코로나19도 인류를 위협하다 스러진 그 많은 바이러스들과 똑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다. 바라건대 하루 빨리 그리 되길!

하지만 기왕 코로나19로 인해 그 동안의 일상을 '멈춤'하는 중이라면 우리 인간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한번 가던 길을 '멈춤'하고 생각해 볼 일이다. 저 깨끗한 하늘이, 저 맑은 물이, 인간이 비워 놓은 길로 나온 저 동물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꾀만 믿고 자연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이 온 세상을 오롯이 우리 인간들 것인 양 마구잡이로 파헤치지는 않았는지.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며 다른 생명체에 대해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길! 물론 이 멈춤의 시간은 짧아야 한다. 우리는 바이러스를 이겨내야 하고, 공장은 다시 돌아가야 하며 수업은 대면수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길에는 과학자의 헌신과 연구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기회에, 행동반경은 좁히되 생각의 폭은 넓혀 우리의 '지금, 여기'를 돌아보는 것도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라 여겨진다.

 

 

                                           정미경 (인문대학 글로벌어문학부 독어독문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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