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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세 살 공포, 여든까지 간다
  • 백민정
  • 등록 2020-04-13 09:20:47
  • 수정 2020-04-13 09: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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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멘탈을 위협하는 기억의 후유증
우리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겪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순간의 기억이 평생을 괴롭히기도 한다. 과거를 소환해 발목을 잡으며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는 기억, 트라우마란 과연 무엇인가.

 

 트라우마는 과거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 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상처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트라우마트 (traumat)’에서 유래된 말로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이나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의미한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많으며 그 이미지가 장기 기억화 된다는 특징이 있다. 큰 트라우마를 겪었을 때 공포나 불안이 각성반응을 나 타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불안해지거나 심한 감정적 동요를 겪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트라우마는 사고의 당사자만 겪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을 통해 사고를 간접 경험하거나 뉴스를 통해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는 경우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수 있 다. 인간은 사회적 인지 능력이 뛰어나 △슬픔 △고통 △두려움 등의 감정을 쉽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2013년, 정신의학의 진단 및 분류 체계인 DMS-5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 기준에서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해야 한다는 내용을 제외했다. ‘직접 경험’뿐만 아니라 세부 사항을 듣거나 떠올리는 ‘간접 경험’만으로도 트라우마 및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환자 지인의 약 15%가 비슷한 증상을 겪는 등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환자의 증상을 접하는 것도 또 다른 후유증을 야기하는데 지난 2013년, 한 연구에서는 전장에서 심한 충격을 받은 퇴역군 인을 치료한 의료인을 조사한 결과 200명 중 약 40명이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로만(Roman)은 이를 ‘이차성 트라우마(secondary trauma)’라고 지칭했다.

 

 그렇다면 트라우마의 사례에는 무엇이 있을까? 제주 4·3사건이 그 예다. 지난 3일, 4·3평화공원에서 진행된 추모식에서 해당 사건 피해자인 김연옥 할머니의 손녀 정향신 양의 발언을 보면 트라우마의 영향력에 대해 알 수 있다. 정 양은 “할머니는 지금도 물고기를 안 드신다”며 “부모 형제가 물고기에게 뜯어 먹혀 죽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4·3사건 당시 8살이 었던 할머니는 가족들이 바다에 던져지는 사고를 겪었고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긴 것이다. 7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건은 할머니를 괴롭히고 있다. 지난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 미국대폭발테러사건 또한 3,00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으며 그로 인해 폭발음이나 비행기에 대한 공포증을 호소하는 등 전 세계인들을 트라우마에 빠지게 만들었다.

 

 불안 및 우울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에 대해 심약하고 극복의 의지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신건강의 문제는 특수한 경우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정신의 학계에서는 기존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뚜렷하게 드러나는 트라우마에 한해서만 질병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는 보편적 문제라는 점에서 만약 주변에 트라우마 환자가 있다면 극복을 강요하기보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더 좋은 치료제가 될 것이다.

 

백민정 기자│1009bmj@k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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