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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사고의 즈음에서 얻는 슬기
  • 편집국
  • 등록 2020-03-30 09: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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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시간이 흐른다. 산에 어느덧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개했다. 새싹이 잎이 되어 싱그럽다. 그믐달이 없어지고 초생달의 옅은 자취가 시작되고 있다. 낮과 밤이 바뀌고, 영등달이 삼월달이 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멈춘 사이 여전히 우주의 시간이 흐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쉬지 않고 나아간다. 얼마나 우리 인간이 나약하고 하염없는 존재인지 정말로 실감한다.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것들의 등장이다. 우리가 이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자리에 안분지족하면서 새로운 것을 향한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멈추지 않는 새로운 흐름 역시 계속되어야만 한다. 이를 거절하는 것은 마땅한 일은 아니다. 나라의 문제가 이제 세계의 문제가 되었으며, 기존의 나라 체제로 이를 막고 개선하는데 한계가 있음이 자명하게 밝혀지고 있다. 세상의 재앙은 어느 곳에도 상존하고 있으며, 자연적 재앙이든 사회적 재앙이든 독소가 여전하게 존속하고 이것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임이 확실하다. 이것을 막으려면 저것이 문제가 되고, 저것을 고치려면 이것이 새로 생겨난다.

선거철이 왔다. 보수와 진보, 젊은 세력과 낡은 세력이 서로 물고 물리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젊은 것이 낡은 것이 되고, 낡은 것이 퇴출되면서 이룩한 문화 창조의 지혜와 미립이 서로 공유되지 못한다. 강제로 밀어내야 하고, 개선하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회가 되고 있다. 시비와 타당 여부를 넘어서서 우리는 백성이나 민중을 존중하고 이들의 참상이나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피고 이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문제의 핵심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정치, 종교, 학문, 예술 등이 녹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오히려 굳어진 그것 자체가 우리를 고립시키고 해를 끼치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름이 없는 민심은 방향도 없고, 실체도 없다. 이를 잡으려고 해도 사로잡을 수 없고, 색출하려고 해도 색출할 수 없다. 디지털 플랫폼 사회에서 이들의 향배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문제의 근간이 이들에게 있음에도 이들의 문제 지적이나 사고의 발단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으며, 과연 민심이 있기나 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한 곳에 살면서 묵묵히 논밭을 매던 호미나 곡괭이를 들고 일어서면 범이나 들판의 들불보다 무섭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구체적인 형체가 없으면서도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고 바람보다 빨리 눕는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조선왕조 사회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는 왕과 사대부였다. 누가 주체이고, 이들의 정치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왕을 옹호하는 쪽과 사대부를 주장하는 쪽이 마찰하고 갈등하였다. 조광조가 대사헌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라에 청촉질이 없어지고 청렴하여 맑기가 그지없었다. 기묘사화를 만나서 이 거대한 왕도정치의 이상은 풀잎의 이슬처럼 사라졌다. 왕도는 인의를 함께 하는 겸선의 결과를 갖는 것이고, 이를 구현하지 못하는 것을 패도라고 하였다. 이이가 말했다. 왕도정치를 옹호한 조광조를 두고, 이이는 세 가지를 들어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너무 젊어서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이 완성되지 않았고, 충현의 무리 가운데 명예(好名之士)만을 탐하는 이들이 있어서 의론이 날카롭고 일을 도모함이 점진적이지 않았고(作事無漸), 임금을 바루는 격군(不以格君爲本)의 자세보다 겉치레를 내세운 점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백성의 여망에 어둡고, 자신들만을 위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한다. 모진 궁핍과 간난 속에서 추운 겨울을 견디고 나온 작은 나뭇잎은 물러섬이 없다. 매서운 꽃샘 추위에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의 길을 부지런히 가서 마침내 녹음이 되어 우거진다. 변혁은 <<</span>주역>>에서 택화혁괘에서 비롯된다. 솥 안의 음식이 잘 익음이 관건이다. 불을 땔 때에 불의 강도가 세면 밥이 타고, 불의 강도가 약하면 밥이 설익는다. 적시에 여러 가지 부합하고 자연의 순리를 어긋나지 않는 곳에 변혁의 조짐이 도사린다. 어지러운 세상에 백성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임을 아는 것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인간의 나약함을 알고 아들 세대에 자리를 내주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의 마음을 사로잡는 슬기가 필요하다. 날카로움을 더디게 사용해야만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을 온당하게 바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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