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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다가가면 찔릴까 두려워
  • 전은지
  • 등록 2019-10-07 10: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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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인들의 딜레마
현대인들의 이야기 속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인간관계’다. 사람들은 관계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선을 지켜 자신에게 다가오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본지에서 다뤄볼 ‘고슴도치 딜레마’ 역시,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최근, 인간관계를 쌓거나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지치고 인간관계 자체에 피로도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리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선을 지켜 자신에게 다가오길 원한다. 그래서 ‘그럴싸’라는 신조어가 생겼으며 인간관계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그럴싸’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인싸도, 아예 혼자 지내는 아싸도 아닌 중간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을 칭한다. 다시 말해 인간관계에 대한 사람들 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섣부른 잘못이나 실수로 상처를 받을까봐 사람들과의 교류를 줄이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는 통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인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 호소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 20대 남녀 643명을 대상으로 ‘관태기 1) 를 겪고 있는 20대의 인간관계 인식 및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연락처에 등록된 지인 중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은 7.9%에 불과했다. 등록된 10명 중 ‘편하다’고 꼽을 만한 이들이 1명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더불어 ‘처음 만나거나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한 적이 있다’에 50.1%가 답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심리학적인 용어로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부른다.

 고슴도치 딜레마 현상이란 인간관계에 있어, 서로의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상태를 말한다. 고슴도치 딜레마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저술한 저서의 우화에서 비롯됐다. 이후 정신분 석의 대가라 불리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가 저서 《집단 심리학과 자아의 분석(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the Ego, 1921)》에서 고슴도치 딜레마를 인용해 심리학 용어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우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추운 겨울날,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의 바늘이 서로를 찔러서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추위는 다시 고슴도치들을 모이게 만들었고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서로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고슴도치들의 모습은 현대인의 모습과 많이 맞닿아 있다. 상대가 혹여 내가 가진 가시에 찔릴까 다가가지 못하고 상대의 가시에 찔릴까 다가와도 밀어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관계를 회피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럴때 는 우화 속 고슴도치처럼 최소한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상대와 내가 서로 다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해 다가가는 것이다.

 이외에도 밝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뜻하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역시, 현대인들이 자주 겪는 증상 중 하나이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인 상황을 두려워하고 이를 회피하려고 하며 두려워하는 ‘사회 불안 장애’를 겪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증상들은 본인보다도 타인의 관계와 시선을 신경 쓰기 때문에 나타난다. 인간관계는 나와 전혀 다른 타인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렵게 느껴지고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신경 쓰게 된다. 하지만 나를 전부 상대에게 맞추거나 상대를 전부 내 입장에서 볼 것이 아니라, 고슴도치 딜레마처럼 어느 정도 상대와 나 사이의 간격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수많은 관계에서 ‘내’가 주체가 돼야 다른 이들과의 관계 역시 원만히 나아갈 수 있다.

1)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관계에 지친 것을 뜻하는 말

전은지 기자│juneoej@kgu.ac.kr
덧붙이는 글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인간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관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간관계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오늘 언급한 고슴도치 딜레마 현상의 고슴도치들처럼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인간관계를 쌓는다면 모두가 편한 관계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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