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위험할 때 누르세요”
경찰이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 염려가 있는 각종 사건·사고의 △피해 자 △신고자 △목격자 △참고인 등에 지급하는 스마트워치는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손목시계형 기기로 지난 2015년 10월 1일 도입 됐다. 기기의 응급버튼을 1.5초 이상 누르면 △서울경찰청 112지령실 △관할 경찰서 공용 휴대폰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 휴대폰으로 동시에 문자 메시지가 전송되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발생한 위급상황에서 스마트워치의 기능으로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울산지방경찰청 112 종합상 황실에는 부산 거주자 A씨의 스마트워치 긴급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스마트워치의 강제수신 기능을 통해 남녀의 말다툼 소리가 들린 뒤 전화가 끊긴 사실을 확인하고 A씨가 탑승 중이던 전 애인 B씨의 차량을 검거했다. 2017년 고창에서도 출소한 내연남으로부터 위협받던 C 씨의 스마트워치 위치를 파악한 경찰이 긴급 출동해 무사히 구출한 바 있다.
피해자, "왜 눌렀는데 오질 못 하니"
이처럼 도입 이래 피해자 보호를 위해 쓰인 스마트워치지만, 최근에는 기기 결함 등이 발견되며 신뢰성이 곤두박질치는 실정이다. 지난달 5일, 배우 윤지오씨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故 장자연 씨가 성추행당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하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이후 해당 사건 증인으로 두 차례 조사받은 윤 씨에게 경찰은 지난달 14일부터 신형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등 신변보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신변의 안전을 위해 마련된 거처에서 의문의 흔적을 발견한 윤 씨가 세 차례 스마트워치 호출버튼을 눌렀지만 경찰은 아무 대응이 없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윤 씨의 청원이 올라오고 나서야 “기기 결함”이라는 해명과 사과, 24시간 밀착경호 특별팀 구성이 이뤄졌다. 윤 씨는 최초로 호출버튼을 누른 오전 5시 55분 이후 경찰이 무응답으로 일관한 11시간 사이, 자신의 목숨에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었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여론은 이번 논란으로 회자된 지난 사례들만 봐도 윤 씨의 분노가 충분히 납득된다는 분위기다. 2017년 8월, 헤어진 배 씨가 지속적으로 찾아와 협박한다며 신변보호를 요청한 임 씨에게 경찰이 스마트워치를 지급했지만 참변을 당한 사건이 그 예다. 스마트워치 지급이 이뤄지고 얼마 뒤 임 씨의 가게에 배 씨가 찾아와 스마트워치의 위급신고 버튼을 눌렀지만 결국 배 씨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임 씨에게 지급된 기기의 ‘실내 위치값 측정 불가’란 한계점, 이에 대해 일선 경찰들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점이 참변의 원인으로 거론됐다. 위치를 혼동한 경찰이 가게가 아닌 집으로 출동하는 동안 임씨는 비상버튼을 누른지 단 10여분 만에 칼에 찔려 사망한 것이다.
여론, “죄송하다면 다야?”
논란이 거세지자 청원에 대해 사흘만에 답변이 이뤄졌으며, 경찰측은 윤 씨의 스마트워치 교체와 숙소 이전을 진행했다. 또한 현장 테스 트 결과 정상 작동됐지만 당시 호출 기록이 존재함에 따라 일시적 오류를 일으켰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윤 씨의 스마트워치에 대한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청원 답변자로 나온 서울지방경찰청 원경환 청장은 “전체 스마트워치 2,050대에 대한 긴급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사 결과, 112지령실 및 지령팀장에 신호가 가지 않았으며 그나마 담당 경찰관에게 오전 6시경 문자가 전송됐으나 오후 2시경 확인한 정황이 드러나 큰 충격을 안겨줬다. 심지어 앞선 윤 씨의 주장에 의하면 뒤늦은 확인 후 곧바로 연락을 취하지도 않은 셈이다.
아무리 고성능의 호출 기기가 있다고 해도 경찰 인력이 부족하거나, 인력이 넘친다고 해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대응이 미숙하면 아무 소용 이 없다. 스마트워치를 차지 않은 약자에게 책임이 전과될 수 있다는 부작용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핵심은 시민의 창과 방패가 돼야할 이들이 나 태한 자세로 의무를 다 하지 않으면, 어떤 사건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