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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작.소] 느려지지 않는 시계가 없다 / 이웃집
  • 김희연
  • 등록 2019-04-15 10: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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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지지 않는 시계가 없다

유선욱(문예창작·2)

 

틀어진 조판을 다시 짜러 옷집에 찾아간 오후

오후엔 새벽같이 어둠이 밝고

욕심이 오래간만에 초침을 앞서주었다

과도한 아낌으로 이미 닳아버린

내 머리카락을 메만지던 주인은

비수기마다 연락처를 남기고 가는 한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귀 뒤에 숨겨둔 빗자루로 달을 청소하러 간다는

그는, 숨기는 게 없는 마술사다.

 

자꾸 커지는 걸 보다가

달은 내 뒤로 숨었다 이런 날은 잘 없다면서

아르바이트생은 호들갑을 떨며 간판 불을 내렸다

퇴적된 지층을 연구하는 소리가 가게 뒤편으로부터 들린다

 

혹시 혹시 그래도 내게 아주 작은 마술을 부려줄 수 있다면

그건 아마 블랙홀이다

차원을 찢고 유랑하는 비수 위의 샴발라

 

어쩌다 투명하고 동그란 구슬의 속성을 연구하는

안구의 움직임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여전히 달은 깨끗하고 뒷면은 갯지렁이가 우글거린다

애초에 실직자이던 그는, 여전히 마술을 부린다.

 

나는 허투루 하지 않을 장소에서

나방 한 마리를 보았다, 22시.

 

18.12.11

 

작품설명

저번 해, 그러니까 작년, 바쁘다고 하면 나름대로 바쁘다고 할 수 있는 날들이 다 지나고 휴식의 시간이 내게 필요했다. 동시에 오랫동안 쓰지 않던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분명히 그런 행동은 개인적인 발전과 깊게 관련이 있다고 느꼈다. 그 순간 나는 호들갑을 떨고 싶었다. 나를 이끌어줄 사람에 대한 갈구가 생겨났고, 불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누가 내 시와 세계에 관심을 가져줄지 궁금하다. 이렇게 보면 나도 영락없는 영업사원이구나.

 

 

 

 

 

이웃집

임경은(국어국문·3)

 

 저 낡아빠진 집은 도대체 뭘까? 소녀는 자신의 집 마당에 앉아 맞은편의 칙칙한 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곳에 산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집 주인은커녕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걔는 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그 집의 문이 열리는 걸 본 사람이 있대. 억지로 으스스한 목소릴 꾸며내던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 했다. 그리고 말이야, 그 때 그 집안에 들어가면 두 번 다신 나오지 못한다는 거야. 소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댔다. 쓸데없는 괴담을 너 무 많이 들었다니까. 건너편에 보이는 검은 창문으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소소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소녀는 황급히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멍멍!”

 

 소녀는 침대 아래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 눈을 떴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강아지를 안아 올리던 순간, 건너 편 집의 문이 열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열려 있잖아?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그에 버금가는 쓸데없는 호기심이 샘솟았다. 소녀는 살금살금 방에서 빠져나와 문을 살짝 열었다. 들어가지만 않으면 되니까 괜찮아.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안돼, 기다려!”

 

 그 순간, 소녀의 강아지가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소녀는 다급하게 강아지를 뒤쫓았다. 강아지는 말릴 새도 없이 맞은편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녀는 주춤했지만, 결심했다는 듯 집안으로 향했다. 불하나 켜져 있는 복도는 캄캄했다. 강아지의 짖는 소리를 따라서, 소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방안 구석에 앉아 있는 강아지를 발견하였다.

 

“놀랐잖아.. 빨리 나가자, 여긴 너무 위험해.”

 

 소녀는 강아지를 안아들고 더듬더듬 문으로 향했다. 삐걱삐걱, 텅 빈 집안에 낡은 복도를 걷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소녀가 불현듯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곤 확인하듯 등 뒤를 바라보았다. 뒤는 그저 어둠뿐이었다. 분명히 이쪽으로 왔는데? 소녀는 다시 앞으로 향했다. 점점 소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아닌데. 이상해 이상하 다고! 아무리 걸어도 나가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걷던 발걸음이 빨라지고, 숨소리는 이내 울먹이는 소리로 바뀌었다. 소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계속, 계속.

 

 다음 날, 마을은 간밤에 실종된 여자아이와 강아지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목격자는 없었고 단서라곤 소녀의 집 문이 열려 있던 것이 전부였다. 부모는 울먹이며 하소연했고 경찰은 범인이 소녀의 집에 몰래 침입하여 소녀를 몰래 납치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수사에 착수했다.

 

작품설명

길을 걷다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낡은 집을 보게 됐다. 그 집과 마주쳤을 때 나에게 줬던 인상을 배경으로 삼아 짤막한 소설 로 재구성했다. 특정 공간이 우리에게 불러 일으키는 감정은 단어로 설명하기 모호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영상, 이미지로 그려질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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