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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만난 수원
  • 편집국
  • 등록 2019-03-18 10:56:14
  • 수정 2019-03-18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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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위를 모티브로 작가 데뷔를 했다. 무슨 운이 들었는지 ,마치 가위라는 물체를 처음 본 사람들처럼 세계 각국의 미술관에서 초대전시를 하자고 난리를 쳤다. 1994년부터 정확히 98년까지였다. 그때 난 스스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줄 알았다.

 

 해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다. 98IMF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 모든 예술은 뒷전으로 치워졌다, 예술의 경쟁력은 국가의 경쟁력과 어느 정도는 비례한다. 아니, 어느 정도가 아니라 상당 부분 함께 간다고 말할 수 있다. IMF 위기가 시작되자 모든 기획전들은 기약 없이 연기됐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결과 당장 먹고 살 일이 감감했다. 예전에 선배들이 시간 강의 나오라 하면, 분초를 다투며 가서 격한 감사 표현을 했어야 했는데,,개인전 일정이 있어서 이번 학기는 어렵다는 등 강의를 주려고하는 선배들 힘 빠지는 소리만 골라 해서 정규적으로 나가는 시간강사 자리도 없게 된 일들을 후회하며, 교수 초빙 광고가 나오면 무조건 원서를 내게 됐다. 드디어 992, 수원에 소재한 경기대에 환경조각과가 신설되면서 전임강사로 채용됐다. 처음 경기대에 갔을 때, ‘선천적 지리 장애가 있던 나는 초행길이었던 터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출발했다. 지금처럼 차 안에 길 안내 장치가 없었던 시절이라 당연히 온 수원을 헤맸다. 신호가 멈출 때마다 경기대 가는 길을 옆 차 운전자에게 물으니 창룡문 근처라 했다.

         

  창룡문 근처라는 말만 되뇌이며 남대문 비슷한 문이 있기에 맞나 보다 물어보면 화서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른 차 운전자에게 물으니 경기대는 장안문 근처라고 했다. 비슷비슷한 문이 있어 가보니 그 문은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는 팔달문이었다.

       

  그 많은 성문들을 돌고 돌아 겨우 찾아간 경기대학교, 도착해보니 신임교원 임용장 수여식은 이미 끝난 뒤였다. 하지만 그날 수원은 내게 시간이 머무르고 있는, 온몸으로 시간을 느낄 수 있는 품격 있는 도시라는 첫 인상을 남겼다. 역사가 현재와 공존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어우러져 어느 것 하나도 낯설지 않는, 살아 숨 쉬는 도시 수원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천재군주, 발명가, 학문정치의 주역, 무예군주, 무인군주. 한 나라의 통치자이자 스승이었던 정조! 세계 최초로 왕이 세운 계획된 신도시 수원은 실학사상의 실천자 정약용 등을 기용해 건설한 유토피아였다. 그날 이후 내 머리 속엔 하나의 커다란 물음표가 생겼다. 이토록 훌륭한 신화를 갖고도 수원은 왜 세계적 명품 도시로 알려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인가? 왜 관광객들이 몰려오지 않는 것일까? 성문 하나마다 역사의 갈피를 채우는 감격과 흥분의 장면들을 왜 사람들은 궁금해 하지 않는 걸까?

 

  오늘날 유럽의 많은 유서 깊은 도시가 세계 관광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대부분 뛰어난 문화유산을 해석하고 이야기거리로 발전시켜 연결성 있는 문화마케팅을 펼친 결과다. 21세기에는 세계의 보편성에 바탕을 두면서 특정 국가의 이미지, 즉 문화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는 도시 디자인이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서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다. 문화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언어처럼 살아 움직이는 사회적 실천이며 협동의 산물이다.

 

  그런 예는 많다. 이탈리아 베로나는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줄리엣의 집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소재로 한 지역 마케팅을 통해 도시 브랜드 수준을 끌어올렸다. 도시가 갖고 있는 이야기 만들기가 경쟁력이며 재발견의 핵심인 것이다.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화성과 그 곳을 품고 있는 수원. 도시의 번잡함을 뒤로 하고 성곽 따라 마음 속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화성 도시는 때로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는 방치된 미아의 즐거움과 생각의 길을 따라가는 산책의 흥분을 제공하는 장소이다. 대도시는 도취의 장소라고 인식된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 새로운 것, 도시는 초현실주의적인 얼굴과 같다. 소멸과 생성과 열락과 침묵을 휘도는 거대한 핏줄 같은 것!

 


안필연(입체조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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