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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이란 무엇인가] 작가의 마음가짐
  • 김희연
  • 등록 2019-03-18 10:38:34
  • 수정 2019-03-18 10: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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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는 왜 글을 쓰는가?
본지는 경기대신문 특집 기획으로 “출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출판은 크게 △작가 △기획편집 △디자인 △마케팅 △홍보 △서점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총 6가지 분야에서 종사하는 각각의 전문가에게 이야기를 들을 예정이다. 가장 먼저 책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

 

 흔히 작가가 원고를 완성하면 책은 금방 나온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체 과정 중에서 작가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는 건 이제 막 한 단계가 지났을 뿐이다.

 

  2015년 봄, 처음으로 출판사에서 원고 계약 전화를 받았다. 그전까지 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 이메일을 받아온 터라 정말 행복했다. 이제 공은 출판사에게 넘어갔으니 책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면 될 줄 알았다. 그건 큰 착각이었고, 그 때부터 수많은 과정을 더 거친 뒤에 책이 출간됐다.

 

 우선 편집자는 원고를 점검하고 교정하는데, 이 단계에서 원고 수정을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는 단순히 원고를 교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의 완성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자기 작품에 빠져 객관적인 시선을 놓치기 마련이다. 편집자가 이 시선의 공백을 채우고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편집자의 시선이 작품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책에서는 디자인의 영역도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서점에 가서 책을 볼 때 표지 디자인 때문에 책을 사기도 하고, 사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적절한 폰트 크기는 누군가에게는 작고 누군가에게는 크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살 때는 실제 크기가 아니라 썸네일의 크기로 보기 때문에 그 역시 디자인의 영역에서 결정된다.

 

 그다음에는 제작의 영역도 있다. 어떤 재질의 종이로, 어떤 두께의 종이로 제작하는 지, 무선으로 제작하는 지, 양장으로 제작하는지도 결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 때문에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가면, 책이 예상보다 늦게 나온다. 짧게는 2-3개월이면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책은 2-3년 뒤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제작까지 진행되면 비로소 책을 받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첫 책을 받아봤을 때의 기쁨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내 앞에 놓인 작가로서의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종이 냄새를 맡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출판 마케팅의 영역도 굉장히 중요하다. 서점에 가서 경제/경영 코너를 살펴보면 마케팅과 세일즈에 관한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있다. 그 대부분은 출판 마케팅에 적용이 안 된다. 도서는 우선 경쟁 상품이 없다. 내가 A라는 추리 소설을 샀다고 옆에 있는 B라는 추리 소설을 안 산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도서 판매는 다분히 충동적이다. 책을 사겠다는 계획은 있을지 몰라도 어떤 책을 사겠다는 계획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에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고 있으니 상대적인 가격차로 판매를 도모할 수 없다. 이런 도서가 가진 독특한 성격 때문에 독자에게 어필하기 위한 마케팅도 필요하다.

 

 물론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작가의 역할이 시작이며 끝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같이 이야기하고 논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역할을 독자도 같이 한다고 생각하면 책 한권이 출간되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작가는 그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서 출판사와 함께 작업하기 이전에 작가는 스스로 글쓰기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어떻게 글쓰기만큼 쉬운 것도 없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그걸 그냥 종이 위에 쓰면 그만이다. 동시에 글을 쓴다는 게 너무 익숙한 작업이라 더 어렵기도 하다. 작가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다독(多讀): 많이 읽고, 다작(多作): 많이 쓰고, 다상량(多商量): 많이 생각한다. 무려 송나라 시대 구양수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1000년 전에, 지금도, 앞으로도 통용될 말이다. 다독은 이제 책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건 문학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야기가 문학 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만화와 웹툰까지.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흐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세기 초에 나온 장편소설을 보면 들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두꺼웠다. 지금은 가볍게 앉을 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장편 소설도 나온다. 웹소설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대사 앞에 캐릭터의 이미지를 넣어 누가 하는 말인지 이미지로 알게끔 한다. 시대에 따라 이야기의 구조가 변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접해야 한다.

 

 많이 쓰는 것과 많이 생각하는 것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다. 흔히 훌륭한 작가는 얼마나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많은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그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작가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서 이야기의 폭을 풍성하게 해준다.

 

 많은 이야기를 쓰는 것뿐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탈고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부분 원고는 몇 번의 탈고를 거치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스무 번씩 탈고하기도 하고, 누구는 쓰면서 동시에 탈고하기도 한다. 작가 개인마다 과정은 다르지만 초고를 완고로 만드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야기를 생각하고 구상하는 과정은 작가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작업이다. 머릿속에서는 뚜렷한 생각과 희미한 상상이 어우러져 늘 새롭고 놀라운 게 나올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이야기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퍼뜨리는 과정은 정말 즐겁다.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고리를 몇날 며칠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를 때, 그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작년 겨울 목욕탕에서 때를 밀다가 갑자기 생각난 장면을 메모하려고 탈의실로 뛰어나온 적이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작가는 언제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게 출판사에 투고하는 것이든, 친구에게 보여주든, 누군지 모르는 제3자이든 상관없다. 작가는 글을 쓰고 나면 자기가 구상한 세계에 갇혀 객관적인 시선을 잃는다. 누군가 내가 쓴 원고를 보고 평가를 해주는 일은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내가 듣기 싫어하는 평을 해주는 사람일수록 원고를 보여주기 좋은 사람이다.

 

독자는 어디에 있는가

 

 책이 출간되고 나면 이제 책의 운명은 독자에게 달렸다. 책이 출간되고 서점의 신간 코너에 내 책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모든 작가는 자기 작품이 많은 독자들이 읽어주길 원한다. 독자가 내 책을 읽고 행복하길 원하고 감명 받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작가뿐 아니라 편집자도 디자이너도 마케터도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결과가 항상 만족스럽지 않다. 미국의 소설가 조이스 캐롤 오츠가 한 말 중에 늘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다.

 

 ‘이상적인 독자를 기대하지 마라. 아니, 아예 독자를 기대하지마라. 독자가 있긴 있겠지만, 다른 책을 읽을 것이다.’

 

 대부분의 책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초판조차 팔리지 않는다. 서점 신간 코너에 놓여 있던 내 책은 어느새 ‘재고 0’이 돼있다. 인터넷 서점의 웹페이지에서 출판사에서 마케팅으로 진행한 리뷰 이벤트 이외에, 실제로 독자가 읽고 리뷰를 올린 책은 의외로 많지 않다. 베스트셀러에 한정돼있다.

 

 내 경우 어떤 책에는 딱 한 개의 리뷰가 있는데, 그것도 책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리뷰였다. 그래도 반갑다. 흔히 하는 말 중에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누군가 읽었다는 사실이 정말 반가울 때가 있다.

 

 작가의 마음가짐을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작가는 누구를 위하여 글을 쓰는가? 처음에 독자를 위해서, 대중을 위해서 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이스 캐롤 오츠가 말했듯 독자는 내 책을 읽지 않는다.

 

 그럼 작가는 누구를 위하여 글을 쓰는가? 작가에게 글쓰기는 단순하게 한 상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다. 가슴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적절한 언어를 풀어내는 작업 자체가 목적이 된다.

 

 나는 주로 동화와 그림책을 쓴다. 내 책을 읽는 독자는 유치원에 다니거나 초등학교에 다닌다. 흔히 유아동 도서는 교육적인 목적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유아동 도서는 읽는 대상을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원고를 쓸 때 염두에 둬야 하는 점이 많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시 되는 건 결국 ‘내가 가진 생각을 어떻게 언어로 풀어낼까?‘이다.

 

 희미하게 뜬구름처럼 돌아다니는 상념을 붙잡아 질서를 부여하고 논리를 만들어 한줄 씩 써내려가는 작업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가끔은 글쓰기 자체가 나에게 치유를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진정성 있는 글쓰기 자세가 확대되면 독자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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