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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게 사라지기
  • 편집국
  • 등록 2019-03-04 10:05:51
  • 수정 2019-03-05 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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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불혹(不惑)을 맞이했다. 인생의 선배들 입장에서는 이 말이 귀여워 보일 수도 있겠다. 주관적 관점에 따라서는 그때가 좋을 때야, 혹은 그때가 청춘이지, 라고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불혹을 맞이한 입장에서는 느낌이 다르다. 물론 나이에 얽매이는 편은 아니다. 서른이 되었을 때에도 마흔이 되었을 때에도 똑같이 한 살을 더 먹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불혹이라는 말을 되뇌어보니, 10대 혹은 20대였을 때 막연히 생각하던 것과 괴리감이 있다. 그때 생각했던 나이 40어른이었다.

 

공자는 논어위정편에서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세웠다(三十而立). 40세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게 되었다(五十而知天命). 60세에는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六十而耳順)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했다. 40세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말은, 세상사에 정신이 팔려 우왕좌왕하거나 판단력을 흐리는 등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된 것을 말한다. 과연 그러한가.

 

공자가 살던 시대의 나이와 지금의 나이를 같은 수준으로 대응시킬 수는 없다. 사회환경이나 인간의 수명이 그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40이라는 객관적인 수치가 주는 인상은 매우 강하다. 불혹의 나이 40대에는 이미 자기 중심이 확립되어 있고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나이가 드는 것에 비례하여 내면이 충실해지거나 내구성이 강화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부피만 불어나 외부 세계와 맞닿는 표면적만 커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접점에서는 수많은 갈등과 회의가 생성되며, 그로부터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싹튼다. 미혹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의심에 사로잡힌다. 이 의심이 내부를 향할 때 자기 중심은 제대로 설 수 없다.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가 2000년에 발매한 앨범에는 ‘How to disappear completely’라는 곡이 있다. 이 노래는 밴드의 프론트맨 톰 요크가 친구 마이클 스타이프(밴드 R.E.M의 보컬)로부터 밴드투어를 다니는 것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이다. 화자는 고통과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계속해서 “I'm not here, this isn't happening...”이라고 읊조린다. 이것만 본다면 단순히 일상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투정을 담은 곡으로 여길 수도 있는데, 막상 들어보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 앨범은 직전까지 라디오헤드가 주로 해왔던 멜로딕한 기타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난해하며 불친절한 사운드를 선보이는 출발점으로서 평가된다. 톰 요크의 보컬은 몽롱하면서도 신경질적이고 처절하다.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고자 몸부림치는 화자의 고통이 그대로 전달된다. 심지어 본래 이 곡의 제목은 ‘How to disappear completely and never be found’였다.

 

20대에 이 곡은 막연한 반항심의 표출수단이었다. 불만족스러운 세상에 대한 소극적이고도 점잖은 반항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노래는 실존의 추구로 들린다. 거짓인 진실과 진실인 거짓, 편견과 자가당착, 회의와 허무주의, 가치의 붕괴와 부화뇌동, 질시와 혐오. 자아의 뿌리를 뒤흔드는 이 모든 유혹으로부터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오로지 의심해야 할 것은 방향을 잃지 않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가령 학문의 성취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을 정확히 알고 똑바로 향하고 있는지를 의심해야 한다. 이로써 불혹에 이를 수 있다. 다만 평생을 써도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보면 나이 40에 불혹의 타이틀을 당연하게 달아준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왕 타이틀을 단 이상 조금이라도 미혹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사라져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당연히 그 자체도 고통이며 삶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40대 초입의 가을에 잠깐이나마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에 대한 꿈을 꿔본다.

 

 

                                                                 김세준 (법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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