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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3월 1일, 태극기로 물들었던 그 날
  • 박서경 신문사 기자
  • 등록 2019-03-04 09: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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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관순 사적지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읽다
1919년 3월 1일은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다. 그리고 지난 1일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본지에서는 삼일절에 대해 학생들에게 자세히 알리고, 독립운동가들의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유관순 열사와 관련된 사적지를 찾아가기로 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갇힌 '서대문 형무소'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독립만세를 외치기까지

 

 삼일절은 191931일을 기해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날이다. 3·1운동은 한국의 독립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렸다는 의의를 지니며 이를 기념해 국경일로 지정됐다. 3·1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탄된 후, 한국의 의병과 열사들은 항거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무단통치로 이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러던 중,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됐다.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국내에 알려지자 독립운동의 분위기가 고조됨과 더불어 고종황제가 갑자기 붕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항일의식이 커졌고 민족지도자들은 3·1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31일 당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은 원래 탑골공원에서 이를 낭독하기로 했으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에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를 기다리던 남녀학생 5,000여 명 중 한 학생이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종로 쪽으로 뛰어가 시위행진이 진행됐다. 이를 시작으로 독립만세운동은 전국각지로 퍼져나갔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삼일절하면 유관순 열사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특히 이번에 3·1운동100주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미국 뉴욕주에서는 유관순의 날이 제정됐다. 따라서 관련 사적지를 찾아가 유관순 열사의 삶을 살펴보기로 했다.

 

3·1독립운동의 점화지, 탑골공원


△서울 탑골공원 내에 위치한 '팔각정'
 

 앞서 설명했던 기미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5,000여명의 학생 중에는 유관순 열사가 있었다. 유관순 열사는 당시 이화학당에 다니던 학생이었다. 이화학당의 선생님들은 시위에 참가하려는 학생들을 말렸으나 몰래 빠져나와 만세운동에 참가한 것이다.

 

 이 탑골공원은 서울시 종로구 종로238-1번지에 위치한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사적 제354호로 지정된 탑골공원은 앞서 설명했듯이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팔각정이 있으며 만세운동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판들도 있다. 또한 독립선언서 전문과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인 손병희 선생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고향 천안시 병천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하다


△유관순 생가지 뒤의 매봉산에 오르면 '봉화지'를 만날 수 있다
 

 탑골공원에서 3·1운동이 일어난 후에 일제는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 임시휴교령을 내렸고, 313일에 유관순 열사는 사촌 언니와 함께 천안 병천의 집으로 귀향하게 됐다. 그녀는 고향에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고, 그곳에서도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한다. 이에 아버지 유중권을 비롯해 동네 유지들과 함께 41일 아우내 장날 정오에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논의하고 이를 준비했다.

 

 331일에 유관순은 매봉산에 봉화를 올렸고, 주변 24개 지역에서도 일제히 봉화를 올려 서로 독립만세운동를 계획대로 전개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41일 당일에 조인원의 독립선언서 낭독 후, 유관순 열사를 필두로 한 3,000여명의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이 바로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이다.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 있는 유관순열사 기념관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있고 그 뒤의 매봉산에는 유관순 열사가 봉화를 올렸던 봉화지가 있다. 생가와 봉화지는 사적 제230호에 지정됐으며 그 외에도 이곳에서는 추모각 초혼묘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기념관 등을 볼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도 가두지 못한 대한독립만세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을 이끌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그녀는 감옥에서도 3·1운동 1주년을 기념해 만세시위를 이끌었고 결국, 모진 고문과 폭행을 이기지 못하고 1920928일 여구치감 8호 감방에서 순국했다.

 

 유관순 열사가 갇힌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애국시민과 학생 등 가장 많은 인원이 수감됐던 곳이며, 악명 높기로 유명한 감옥이었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해있고 감옥의 모습과 사형장이 보존돼있다. 사형장의 경우, 사적 제 324호로 지정됐으며 보존을 위해 출입이 제한됐다. 서대문형무소는 이곳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의 고통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장이고 그들의 아픔을 100분의 1이나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유관순 열사, 그녀의 업적을 기리다


△천안 유관순 기념관 인근의 '초혼묘'

△유관순 열사를 추모하는 '추모각'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이화학당의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으나 후에 망실됐다. 이에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19891012일에 초혼묘를 봉안했다. 초혼묘는 앞서 설명했듯 천안 유관순 기념관 인근에 위치해 있다.

 

 또한 1974년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이화여자고등학교는 그녀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을 설립했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유관순 기념관과 그 앞에 있는 유관순 열사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사진 박서경 기자 psk01162000@kgu.ac.kr

덧붙이는 글

지금까지 삼일절에 대해 알고 유관순 열사 관련 사적지를 찾아가 그녀의 삶을 느껴봤다. 하지만 그녀 외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립을 위해 힘써주신 분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모든 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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