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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스스로에 대한 무지가 만드는 혼란
  • 박현일
  • 등록 2018-11-06 13: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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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영하

출판사 : 문학동네

 

 나는 누구인가? 간단해 보이지만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 물음을 두고 평생 부딪히고 고민한다. 정체성이자 지향점일 수 있는 이 질문의 답을 잊어버리면 삶에 큰 혼란이 찾아온다. 멈추지 않는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만 사는 것은 목적지 없는 자동차와 같아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빛의 제국’에 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김기영은 자신을 잊고 살다가 곤란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영은 평범한 가장이자 영화 수입업자로 살고 있지만, 사실 서울로 남파된 북한의 스파이다. 22세 때 한국으로 내려온 그는 배우자를 만나고 중학생 아이를 둘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시민으로서 살아간다. 상부에서 마지막 명령이 내려온 것도 10년이 지난 상황. 기영은 실적이 나지 않는 직장에서 의욕 없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떠한 사전경고도 없이 다음날까지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단 24시간 동안 가족과 직업 등 한국에서 쌓아온 모든 것들을 정리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자신이 스파이라는 사실조차 잊었던 기영은 단 하루 동안 그의 인생을 뒤집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이는 잘 되지 않는다. 반평생 동안 만들어간 삶을 하루 만에 완전히 정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거기에 여권이 만료돼 타국으로 이동하려는 계획이 실패하면서 더 곤혹스러워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귀환명령을 받았다며 다른 스파이와의 접촉을 시도한 기영을 국가정보원에 매수됐다고 오해해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상황은 악화돼간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던 상황은 상부에서 귀환 계획을 취소하면서 일단락된다. 북한으로 돌아가는 대신 유명 브랜드의 시계를 개조한 감시용 전자 팔찌를 차라는 것으로 지시는 바뀌고, 기영은 집으로 돌아간다.

 

 악몽과도 같은 24시간이 지난 후, 기영은 다시 한국에 사는 흔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눈을 뜬다. 그리고는 자신이 언제든 생각하지 못한 목적지로 갈 수 있고, 한국의 소시민이지만 그들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졌다는 자각 하에 세상을 살아간다.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없다는 이유로 혼란을 겪는 것은 기영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러한 삶의 목적과 정체성의 부재는 우리를 마치 기영처럼 갈팡질팡하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지향을 갖고 살아가는가. 이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혼란스러워하는 대신 확신에 차서 삶 위를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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