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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너와 내가 만나는 시간에 관한
  • 편집국
  • 등록 2018-10-08 13: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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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흔히 시간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합니다. 시간이 과거로 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흘러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의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지층처럼 쌓이는 모습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퇴적층처럼 켜켜이 쌓인 시간의 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시간을 직접 보지는 못 합니다. 그래서 늘 비유로 이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봤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시간의 비유들입니다.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시계 △해를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 △조금씩 늘어가는 주름살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간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엄밀히 말하면 시간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닙니다. 계절이 변하는 것은 천체의 움직임 때문이고, 인간의 노화는 세포의 생멸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은 참 이상합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렇게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막상 내가 타고 올라갈 때는 빠르게 흐릅니다. 친구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은 화살처럼 빠른데, 전공 수업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니 어떨 땐, 시간이 그저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게 아닌가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아무튼 시간은 이야기하면 할수록 참 흥미롭습니다.

 저는 소설을 공부하는, 일종의 이야기 학자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가령 이야기학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영화나 소설 같은 이야기를 즐기는 이유는 이야기를 통해서 새로운 시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누군가의 일생을 빠르게 축약해서 전달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한 장면을 오래오래 말해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과거나 현재의 시간도 마음대로 꺼내다 쓸 수 있습니다. 놀라운 과거의 비밀을 밝히거나, 미래의 결말을 미리 보여주고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야기는 시간을 쥐락펴락 하면서 사 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서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축제 △기념일 △ 신화 △민담 같은 것들은 실제로는 시간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특별한 활동들입니다. 나무에 새겨놓은 하트처럼, 시간 위에 특별한 이야기를 새기는 것입니다. 똑같은 시간이라도 어떻게 스토리텔링 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로 기억된 시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슴아픈 이별의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이야기 학자의 관점에서만 말하자면, 시간을 풍요롭게 기억하는 방법은 시간에 나만의 이야기를 부여하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사건입니다. 사건이란 이야기를 구성 하는 중요한 성분입니다. 사건은 나의 일상을 뒤틀고, 나를 변화시키며, 그래서 시간을 역동적으로 만듭니다. 말 그대로 사건이 많을수록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지고 드라마틱해집니다. 그리고 인간이 살면서 가장 많이 만들 수 있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타인과의 만남입니다. 저는 올해 본교에 부임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많은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의 만남은 제 인생의 아주 운명적인 사건이 됐습니다. 여러분들도 매일 그런 우연하고 운명적인 만남을 경험합니다. △친구 △연인 △ 선생님 혹은 새로 본 드라마나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수많은 만남이 매일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우연한 만남들이 우리에게 사건이 되고, 평범했던 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만남들에 조금 더 열린 마음과 조금 더 애정 어린 마음을 가져보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시간도, 인생도 그만큼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공성수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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