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첫사랑의 기억이 있다. 기자에게도 5년 간 고이 간직한 소중한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떠올리면 △설렘 △그리움 △아련함 등 여러 감정에 둘러싸이곤 한다. 영화 ‘20세기 소녀’는 기억 한편에 간직해 둔 첫사랑을 소환하고, 그 시기에 느낀 풋풋한 감성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실제로 방우리 감독은 친구의 첫사랑 재회 이야기를 들은 뒤 잊고 있던 교환 일기장을 꺼내 그 속에 담긴 10대의 추억을 바탕으로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1999년, ‘보라’는 심장 수술을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 ‘연두’ 대신 연두의 첫사랑 ‘백현진’을 관찰해 소식을 전해주는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정보를 더 알아내기 위해 절친 ‘풍운호’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고 뜻하지 않은 설렘을 느낀다. 하지만 수술을 무사히 끝낸 연두가 돌아오면서 예상치 못한 혼란이 생긴다. 연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풍운호였고, 첫 만남의 오해로 인해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보라는 연두를 위해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려 했으나 연두는 이를 원하지 않았고 그러던 중 운호는 갑작스럽게 뉴질랜드로 떠나게 된다. 보라는 운호가 가기 직전에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중 갑자기 뚝 연락이 끊기게 되며 더 이상 운호의 소식을 알지 못하게 된 보라는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한참의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보라의 집으로 운호 동생의 사진 전시회 초대장이 오게 되며 전시회에 간 보라는 운호 동생에게서 운호가 2001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보라는 운호가 캠코더에 남긴 녹화 테이프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조금만 기다려, 곧 만나러 갈게.
보고 싶어, 21세기의 네가”
『20세기 소녀』 中
20세기를 표현하기 위해 당시 많이 사용하던 △공동전화 부스 △삐삐 △비디오 등이 등장해 기성세대에게는 공감과 익숙함을, 신세대에게는 새로움과 신선함을 동시에 안겨줬다. 방우리 감독은 가능한 모든 디테일을 가져와 세기말 분위기를 최대한으로 구현하기 위해 당시의 통신 장비를 적극 활용했다. 당시 인터넷 사용이 막 시작돼 △공중전화 △삐삐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혼재된 상황이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보라는 공중전화를, 운호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장면을 담아냈다.
이런 소품을 통해 20세기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21세기 사람들에게는 기억을 준 영화가 됐다. 어린 나이의 풋풋함과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저돌적인 행동들이 담겨있어 시청하는 내내 잔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영화를 시청하며 잠시나마 첫사랑을 추억해보거나 맑았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
홍지성 기자 Ι wltjd0423@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