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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커뮤니케이션
  • 편집국
  • 등록 2022-12-02 12: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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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희(교양학부) 교수


 일반적으로 패션(fashion)이라고 하면 ‘유행’ 이라는 개념과 같이 쓰이는데 넓은 의미의 패션은 특정한 시기에 한 집단의 사람들에 의해서 채택된 생활양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패션은 단순히 옷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 가구 등의 생활양식 전반에 적용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건축양식과 실내디자인, 예술작품 등의 사조와 의복디자인은 유기적 관계 속에서 함께 유행을 창조해 왔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패션은 이러한 생활양식 중에서의복의 변화, 의복 스타일의 변화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패션의 어원은 라틴어 팍티오(factio)에서 유래 되었으며 ‘사람의 창조 행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사람은 패션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새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의 패션 센스를 칭찬받게 되면 마음속으로 긍지를 느끼게 된다. 반대로 나의 패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들었을 때 그 옷을 입고 있는 하루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새 옷에 대한 찬사와 비판이 내 마음을 밝게도 어둡게도 만들 수 있는 까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복을 자기자신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옷 하나가 삶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취향과 성격, 직업, 라이프스타일 등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해 주는 상징적 시각 언어의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어느 잡지사의 기자는 인터뷰를 할 때 가장 먼저 인터뷰의 성격을 결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옷을 입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가 듣고 싶을 때는 어두운 색의 정장에 화이트 블라우스를 입고, 사적인 이야기나 스스럼없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을 때는 편안한 캐쥬얼웨어를 입는다는 식이었다. 그녀는 먼저 패션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며 그 후광 효과로 일을 부드럽게 진행하려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이런 개념을 흔히 TPO에 따른 옷차림이라고 한다. Time(T), Place(P), Occasion(O)의 약자로 시간과 장소, 경우에 맞게 옷을 입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Person(P)이 추가된 TPPO 라는 신조어가 나오며 누구를 만나서 교류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무게를 두는 추세이다. 즉 패션을 강력한 메시지 전달 수단 뿐만 아니라 소통의 개념으로까지 확장해서 생각하는 시

대가 된 것이다.

 

 옷을 선택하고 토털 코디네이션을 할 때 고려하는 것은 TPPO 이외에도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신체적 조건 등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에 관한 충분한 이해와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상과 디자인, 그리고 신체의 장단점에 대해서 파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상의 루틴과 생활방식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패션디자이너 프라다는 “자신을 잘 알면 당신의 생각과 옷이 조화를 이루어 멋있는 옷차림이 되지만,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그저 우아한 옷차림을 원한다면 해답이 없다. 먼저 자신을 파악한 뒤에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선택 할 수 있는 용기가 옷을 잘 입을 수 있게 하는 비결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교과서적인 규칙과는 정반대의 철학으로 자신만의 패션을 만든 이들도 있다. 늘 같은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은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겠다고 말한 창의적 사고를 지닌 기업가들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항상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은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와 회색 티셔츠만 입는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이다. 적어도 패션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패션 스타일은 옷만으로도 그 사람을 연상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평범함을 표방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그들만의 매력과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패션은 2013년 놈코어룩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옷은 사람들에게 입혀지면서 생명력을 부여 받으며 문화를 담은 ‘패션’이 된다. 패션은 현재의 삶을 보여주는 동시에 과거의 삶을 대변하고, 이후 살아갈 삶을 예측하기도 한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조우하는 모든 것들과 교류하며 문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다. 말이나 행동보다 먼저, 시각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식과 품격을 지닌 패션은 문화적 특성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에 옷의 역할을 신체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에만 국한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수 세기 동안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그 역할을 수행해 온패션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나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사회적 수단으로 패션을 활용한다면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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