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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History] 우리 힘으로 피워낸 민주화의 불씨
  • 김현비 수습기자
  • 등록 2022-05-30 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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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지 말아야 할, 뜨거웠던 35년 전 6월
1987년 6월 10일, 군사 정권의 독재를 타개하기 위한 국민들의 민주 항쟁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피를 흘린 끝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기반, 대통령직선제를 얻어냈다. 6월 지방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본지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던 35년 전 6월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군부독재로 민주화의 희망은 짓밟혔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취임한 최규하 대통령이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밝히며 대한민국에는 잠깐의 봄날이 찾아왔다. 하지만 신군부가 12.12 사태를 일으켜 군사 독재가 부활함으로써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광주를 비롯해 전국의 국민들이 이에 저항했지만, 신군부는 무자비한 유혈진압으로 응답했다. 결국 전두환은 1980년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요원하게 됐다. 


 그러던 1987년, 여러 공안조작 사건을 만들어내며 독재를 이어가던 전두환 정부는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 수배를 위해 서울대학생 박종철을 연행해 수사했다. 수사 과정에서 박종철은 모른다고 답했고, 뒤이은 경찰의 고문 및 가혹행위 끝에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이에 치안본부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로 유명한 내용으로 사건을 발표했지만, 광주항쟁 추모 미사에서 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이를 계기로 반인권적인 군사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폭발했다. 


 더불어 연세대학교에서 개최된 시위 도중 연세대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한다. 이는 한 미국인 기자에게 포착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두 열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다.


 승리를 이뤄낸 국민들의 단결력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군사 정권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자동차 경적을 울리거나 흰 손수건을 흔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호응해 경적을 울리는 택시 운전자들과 흰 손수건을 흔드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진행 됐다. 동월 1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대학생 약 600여 명이 경찰과 대치해 1주일 동안 시위를 이어갔고 14일부터는 명동성당 주변에 모여든 대학생 2,000여 명이 일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또한 동월 18일 진행된 평화 대행진에는 약 1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는데, 회사원들의 가세로 학생들만의 항쟁에서 시민 모두의 항쟁으로 성격이 변화하게 됐다. 이렇듯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6월의 행진은 모든 군인을 진압에 투입하지 않는 한 제압할 수 없을 정도로 번져나갔다. 


 이 같은 국민들의 항쟁에 군사 정권은 결국 타협했다. 당시 여당 대표이자 대선 후보였던 노태우는 △대통령 선거로의 직선제 개헌 △구속자 사면 및 감형 △헌법 개헌 등 민주화에 대한 내용을 담은 6.29 선언을 발표했다. 동시에 청와대에 이를 건의했고 다음 날 전두환 대통령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전 국민 의 기나긴 항쟁과 희생은 그 결실을 맺었다. 이로부터 4개월 뒤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대한민국 역사상 9번 째 개헌이 이뤄짐으로써 국민투표를 통한 대통령직선제를 확정지었다.


 민주주의 이념의 뿌리를 내리다


 6월 민주 항쟁은 전국 각지에서 국민들의 힘으로 독재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평화적인 시위로 정권을 축출했다는 점 역시 매우 높이 평가받으며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9차 개정안이 지금까지도 ‘1987년 체제’로 표현될 정도로 한국 정치·법률 운영의 기초가 되고 있다. 


 6월 민주 항쟁은 사회 전반에 걸쳐 전 국민이 하나 돼 전개했다. 그렇기에 참여한 모든 국민들이 함께 분노하고, 거대한 힘을 발휘해 기본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며칠 뒤, 나라를 이끌어 갈 일꾼을 뽑는 6월 지방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투표소에서 행사할 기본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주어졌는지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현비 수습기자 Ι rlagusql8015@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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