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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나무와 5월의 햇살, 그리고 상흔의 이미지
  • 편집국
  • 등록 2022-05-16 16:44:20
  • 수정 2022-05-30 08: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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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파인아츠 학부교수)


 시간과 죽음을 이길 수 없었던 인간은 이미지를 통해 위안을 얻고 시간과 죽음에 저항하고 견뎌내고자 했다. 바슐라르는 “죽음은 무엇보다도 이미지이고 또 이미지로 산다”라고 말했다.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에서부터 이집트의 고분, 로마시대의 석관과 르네상스시대의 초상화, 17세가 네덜란드의 정물화(바니타스)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죽음은 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우리의 전통 미술 역시 죽음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고분벽화나 부장용 가야토기, 신라의 토용을 비롯해 이후 우리네 전통미술이라고 불리는 것들, 다시말해 다양한 종교적, 신화적 도상들 및 일상용품에 깃든 온갖 상징들은 모두 죽음과 긴밀히 연관된 것들이다. 당시의 신화와 종교란 결국 당대인들의 생사관을 해명하고 죽음 이후를 약속해주는 이데올로기였고 따라서 그 시대의 모든 이미지는 그 이념의 도상화, 주술적 이미지였다. 특히 조선시대 민화(십장생 그림을 비롯한 온갖 화조화 등) 역시 무병장수와 부귀영화, 다손다남 등을 꿈꾸는 간절한 도상들이었고 산수화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불사하는 신선에 대한 염원을 반영하기도 한다. 모두 불사와 불멸에의 강한 희구를 드러내는 의미로 충만한 도상들이다. 그것은 늘 죽음을 극복하고자 한 시도다. 


 서구 미술을 수용한 이래 한국근대현대미술에서 죽음을 다룬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죽음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경험 혹은 근원적인 부재에 대한 사유를 반영하는 미술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은 의아하다. 서구에서 근대기에 형성된 ‘순수미술’은 미술이 오로지 아름답고 감각적인 것들을 다루는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강제했다. 어둡거나 죽은 것들은 추방되었다. 알다시피 근대성은 합리성과 과학이란 이름으로 우리 주변의 삶에서 죽음이란 단어를 지우고자 했다. 이전에 신의 영역이었던 죽음은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극복할 대상으로 변해버렸으며, 나아가 ‘삶의 기쁨’만이 충만한 현실 세계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죽음을 금기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나 미술 내적인 문제만을 형식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한국 현대미술 또한 인간과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들로부터 점차 멀어졌다. 사회와 현실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가능한 한 미술에서 배제되었다. 이처럼 미술이 ‘개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근거만으로 모든 것을 끌어들이며 영역을 확장한 결과, 인간 존재의 문제는 예술가들로부터 소외되었다. 외부 세계를 미적으로 재현하는 구상 미술과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수용과 번안으로 강제된 그간의 한국 현대미술에서 죽음과 같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주제를 다루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이는 서구 현대미술과도 조금은 구분되는 우리의 특별한 경우다. 분단 상황과 반공 이데올로기, 권위적인 정치 권력과 통제된 사상,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순수주의 미술관이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결과로 보인다. 더불어 우리가 그만큼 미술을 장식적이고 아름다움 속에서만 이해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분단, 4.19와 5.16, 70년대 군사독재와 80년 광주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죽음과 폭력, 희생을 경험해온 한국 미술인들의 작품 속에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예가 거의 부재하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타자들의 죽음은 나의 실존에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변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의 죽음에 주목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실 죽음에 관한 사유는 불가피하게 근대성 자체에 대한 반성의 측면을 요구하게 되었고 사회적, 정치적, 인문적 문제로 부상했다. 당연히 미술이 자신의 삶에서 유래한 모든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빈번한 여러 죽음에 대해 작가들이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황홀한 녹색을 안겨주는 4월의 나무와 눈부신 5월의 햇살로 빛나는 이 계절은 동시에 4.19와 5.18의 상흔을 잔인하게 품고 있다. 한국사의 여러 비극적인 죽음을 망각하지 말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 성찰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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