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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납득하는 일에의 헌신
  • 편집국
  • 등록 2021-12-06 10:03:43
  • 수정 2022-03-02 10: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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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 (서양화·미술경영교수, 미술평론가)


박수근이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적인 작가가 된지도 오래되었다. 미술시장과 옥션에서 최고가로 판매되는 인기 작가인가 하면 가장 대중적인, 국민적 화가이자 끊이지 않는 위작 시비로 인해 매스컴에 빈번하게 이름을 올리는 작가가 되었다. 과도하게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느낌, 작품에 비해 가격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의문도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의 그림이 한국적인 그림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한편 숭고한 예술정신과 성실한 작가상을 대표하는 작가로 각인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여간 그는 이중섭, 장욱진과 더불어 한국 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신화적 예술가로서의 전형적인 삶을 살다간 작가로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한 화가이자 가난의 고통과 인정받지 못하고 요절한 작가라는 식의 낭만적 예술관이 예술에 대한 대중의 상식으로 널리 펴져있는 상황에서 그의 삶과 예술을 신화화해서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박수근은 자신을 그저 아무것도 아닌 소박한 화가로 이해하고, 자신의 위상에 걸맞다고 여겨지고, 그래서 자신의 지배하에 놓였다고 생각되는 자기만의 소재를 택해서 그렸던 작가다. 그에게 그림이란 천직이자 순연한 노동이며 생계를 유지하는 행위였을 뿐이다. 그는 그저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자기 주변의 서민들의 생애를 담담하게, 착실하게 그리고자 했다. 자기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절실히 그리고 싶었던 것만을 그렸으며 그것이 화가의 일이라고 여긴 이다. 독학의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와 돌, 그리고 우리 석조물이나 와당, 고구려고분벽화 등을 관찰해 스스로의 표현방식을 찾았고 이를 그만의 독자적인 유화로 탄생시켰다. 아울러 당시 화가들 대부분이 관습적인 소재들을 상투적으로 반복하거나 서구미술을 모방하는데 치중했다면 그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흔히 접하는 도시 빈민자와 행상하는 아낙네, 골목길의 아이들을 그렸다. “왜 화가들은 우리 옆의 소재를 우리 식으로 그리려는 생각을 않고 혹은 외면하면서 서양풍으로만 그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의식적으로 우리 그림에 몰두하였다. 한국이라는 무대(공간)와 그 속에서 활동하는 실체로서의 한국의 서민들을 그린 박수근은 상황을 배제시킨 체 그것들을 부동의 것으로, 어떤 고착성이나 영원성 같은 이미지로 굳게 응고시켰다. 햇빛도 공기도 없는 기억의 공간 속에서 어렴풋이 자신들의 자태를 드러내는 임을 이고 가는 여인들이나 아기 업은 여자들, 길가에 쭈그려 앉은 사람들은 마냥 적막하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대상의 구체적인 표정이나 현실감은 사라지고 다만 이를 바라보는 이에게 아련한 추억의 이미지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그들은 숨고를 틈조차 없이 밀려오는 가사 노동과 행상으로 온 몸이 굴절되어야 했던 아낙네들 그리고 무력한 노인들, 가난하고 슬픈 아이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무기력하고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외로운 이들이기도 하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외로운 심사를 또한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렇듯 그가 다룬 소재, 대상들은 박수근 자신과의 깊은 교감 속에서 표현되었다. 박수근은 짧은 생애 동안 그림 이외의 어떤 생존 수단이나 수완을 부릴 줄도 몰랐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보고 납득하고 이해하는 대상,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상황들을 정확하게 그리고자 했다. 그는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자기 주변의 서민들의 생애를 담담하게, 착실하게 그렸을 뿐이고 자기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절실히 그리고 싶었던 것만을 그렸으며 그것이 화가의 일이라고 여긴 이다. 동시대 현대미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시장에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자신의 체질과 신념, 오로지 자기에게 감동을 주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지금 이곳의 미술인들에게 주는 큰 울림이 있다는 생각이다. 마침 지금 덕수궁미술관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박수근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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