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1-11-22 15:23:15
기사수정



 

 저는 가르치는 일을 소명으로 삼고 있지만 가르친다라는 단어를 즐겨 쓰지는 않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얼마 안 되는 저의 지식에 관련된 부분이고, 그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들과 서로 일깨우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받들 만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스무 명 안팎 되는 저의 수업에 적어도 저의 스승이 예닐곱은 있다는 의미이겠죠. 과연 예닐곱뿐일까요? 좋은 마음과 행동은 좋은 것이니 본받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배울 수 있으니 그들 모두가 제 스승일 것입니다.

 ‘선생스승을 영어로 옮긴다면 똑같이 ‘teacher'이지만, 우리말의 사전적 의미로 보면 선생스승은 다소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선생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스승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만약 선생이 직업으로 지식만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IT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선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지식은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네○○나 구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고 AI 로봇이 더 정확하게 일러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은 학생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그들의 인품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일은 어디까지나 사전적 의미인 선생이 아닌 우리가 바라는 선생(스승)의 몫일 것입니다. ‘선생의 날이 아니라 스승의 날을 기념한다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grave)라는 상징적인 문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완벽한 복지국가의 이념을 표방하면서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르침에 관한 것이라면 어머니 뱃속에서 무덤까지”(from womb to tomb)란 말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 자리를 잡자마자 어머니가 속해있는 세상이라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태아를 갖게 되는 거의 모든 어버이는 자신의 즐거움이나 유익보다는 태아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어버이의 마음가짐을 태교’(prenatal education)라고 부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아이가 태어나면서 곧 바로 한 살이 되는 동양권의 관습에는 인간존중 사상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도 엄연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소중히 보살펴 더 큰 학교로 두려움 없이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는 스승을 만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의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삶의 태도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예화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 어떤 선생님께 무엇을 배웠는가?’보다는 그 선생님께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를 더 많이 기억한다는 이야기는 선생으로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끔 선생은 어떤 존재인지 자문하곤 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그 해답 중 하나를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소설에서 찾았습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A Bruxa de Portobello, 2006)의 주인공 아테나(Athena)가 사막에 사는 베두인 족 나빌 알라이히(Nabil Alaihi)를 스승으로 삼아 서예를 배우면서 나누는 대화입니다.

 

당신은 선생님이신가요?”

선생이라? 선생이란 말이죠.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에요. 선생은 학생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최선을 다하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지요.”

“Are you a teacher?”

“What is a teacher? I will tell you: it isn't someone who teaches something, but someone who inspires the student to give of her best in order to discover what she already knows.”

 

 퍼뜩 내면의 소리가 제게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그대는 이제까지 누구의 선생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조한선 (진성애교양대학 교양학부)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kgunews.com/news/view.php?idx=345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관련기사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네컷만화] 경기대로
  •  기사 이미지 [현속]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  기사 이미지 [영화] 모래 언덕으로의 초대
사이드배너_중앙도서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