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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신 참뜻을 되새기며
  • 편집국
  • 등록 2021-05-18 09:17:03
  • 수정 2021-05-18 09: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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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시절인연이 험난하게 전개되는 시국에 부처님이 이 누리에 오신지 이제 2565년이 되었다. 부처는 서원을 세웠다. 아버지 정반왕이 태자가 칠보로 꾸민 대궐에서 많은 아들을 데리고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정반왕의 뜻이었던 것과 자못 다른 것이다. 아들 실달태자는 정각을 이루어 대천세계를 밝게 하는 것이 실달태자의 뜻이라고 하였다. <<</span>월인천강지곡>> 48장에 전하는 사연이다. 왕국의 태자가 아니라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어 삼천대천세계를 밝히는 여래의 뜻을 두었으니 그 지혜의 깊이와 넓이 및 길이가 끝도 없고 갓도 없다.

우리는 채 백년도 살지 못하고, 그 일생의 길이에 허덕인다. 어디 이뿐인가? 국회의원은 4년의 주기에, 대통령은 5년의 주기에, 공무원은 2년의 보임 기간에 목을 매어 살고 있다. 터무니없이 가련한 인생의 시간들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석가모니가 내건 시간의 길이는 무궁하다. 뿐만 아니라, 바른 깨달음의 시간은 끝이 없이 길게 이어진다. 그것이 인류의 가르침으로 남을 수 있는 까닭이다. 정반왕의 시간은 한 왕가의 영욕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으나, 무연자비의 뜻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게 된 것이 바로 소박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되돌아보자.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과연 사심이 없이 백년의 대계와 함께 이에 의한 정책을 펼쳤는가? 누구든 자신의 자식을 위한 물불을 안가리는 교육을 생각하므로 백년대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를 살아생전의 대상이나 이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교육의 온당한 대계를 수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달리 강구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죽어서의 희망을 달성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어야만 새로운 차원의 미래 희망이 성립이 가능하다. 죽어서의 희망으로 후대 교육을 수립하고 미래를 위한 설계를 한다면, 바른 이치가 유전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당대의 삶을 중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하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소망하는 삶의 양상이다. 그렇지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를 향하여 굳센 희망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적인 이해득실이 표로 귀결되는 현대사회의 문제는 더 이상 개선될 여지가 없다. 앞으로도 이 방식의 해결점은 어느 것도 해소하거나 새로운 전환을 할 수 없다. 그것에 대하여 거는 기대가 근대민주사회의 양상이 되었다. 표를 향한 이합집산의 폐단이 고작 4-5년이라고 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어마어마한 시간을 산 것 같아도 사실은 인류의 미래, 후손을 위한 삶으로서는 그렇게 긴 것은 아니다. 평등사회의 폐단이 드러났으므로 이를 혁신하는 자신의 실천과 방안이 가장 소중한 점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대등한 관계에 있다. 그들의 처지나 문제가 어떻게 다르다고 하더라도 대등한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삶의 현재를 모두 저마다 간직하고 있다. 한 치의 차별도 없는 진리의 빛으로 이 세상을 비추고 나투신 거룩한 부처님의 자비가 온누리에 퍼져 동체대비의 대등함이 이어져야 마땅하다. 성철이 1986년 부처님 오신 날에 내린 법어를 통해서 각성하는 발심을 하자.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 없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
물 속에서 헤엄치는 귀여운 부처님들,
허공을 훨훨 나는 활발한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법당에서 염불하는 청수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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