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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범죄자가 되는가
  • 이윤아
  • 등록 2020-12-08 11: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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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이 있다. 바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와 내게서 공통점을 발견할 때다. 악한 인간 본성의 한계가 어디까진 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꼈을 때, 나는 나 자신이 언젠가 그와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악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잔혹한 범죄의 대다수가 평범한 사람에 의해 자행되곤 한다. 이와 같은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개념은 이 책에서 처음 탄생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아이히만은 전쟁 당시 열차를 활용해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수용소로 이송해 죽게 만들었다. 그는 이 재판을 통해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재판 과정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인간이길 포기한 괴물의 모습이라고 서술하지 않았다. 아렌트는 그에게서 평범하고 준법적인 모범 시민의 모습을 발견하며 악이 가진 평범한 속성을 지적한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無思惟)’에 범죄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전쟁 당시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의 의미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사유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명령에 복종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에 단 한 번도 물음을 던지지 않고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수백만명의 유대인 학살에 기여했다. 실제로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자신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사람을 직접 죽인 적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자신에겐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는 우리가 당연한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타인의 고통을 민감하게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현재와 달리 아이히만의 노고를 높이 치하하는 사회였다. 우리가 사유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사회의 부정한 부분까지도 수용하게 된다. 또한 상대를 나와 같은 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못할 때, 우리가 가진 악함은 끔찍한 방향으로 발현된다. ‘무사유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아이히만을 탄생시키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유하고 질문하며 우리가 가진 인간성을 지켜내야 한다.

 

이윤아 기자thisisprofita@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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